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Apr 20. 2023

프로의 노이즈캔슬링

음악을 듣는 일에 관하여

스무  무렵, 어떤 카페였다.

뱅앤올룹슨의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사운드를 처음 경험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커다란 동그라미에서 출력된 음악은 순식간에 확장되어 공간을 꽉 채우고 내 몸마저 관통하는 듯했다.

Bang & Olufsen Beoplay(이미지 출처 :네이버)


차 안에서 듣는 음 또한 유독 생생하다. 내 차가 생겨서 좋았던 건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 갈 수 있는 자유와 음악을 껏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자동차 내부는 기본적으로 소음이 어느 정도 차단된 상태이므로 음악이 선명하다. 달리지 않을 때 더 잘 들리고, 차량에 내장된 스피커의 퀄리티에 따라 음향은 더욱 풍성하다.


차에 탑승하지 않아도, 대형스피커가 없어도 이처럼 음악에 집중할 수 있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탑재된 헤드폰과 이어폰 음악 감상의 질을 한 차원 높여준다.




보스(Bose) QC 35 헤드폰의 강력한 노이즈캔슬링 상태를 경험한 이 있다. 작년 어느 날 교실에서였다. 수업이 조금 일찍 나서 각자 쉬는 중이었다.  교실엔 틈날 때마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던 조용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근에 좋아하게 된 곡을 선생님에게 들려드리고 싶다며 수줍게 자신의 헤드폰을 건넸다. 흔쾌히 그것을 받아서 리에 쓰는 순간, 사위가 고요해지는 것이었다. 오? 놀라워하고 있는 와중에 김윤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봄날이 간다>였다.


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품고 다니던 쏘니(Sony) 시디플레이어로 수백 은 족히 들었을 그 노래. 김윤아 님이 내 귀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 듯 선명한 음이었다. 노랫말처럼 눈을 감으니 2023년의 교실은 순식간에 2002년으로 시공간을 이동했다. 나는 교사가 아닌 학생으로 교실에 속했고, 고개를 돌리면 바로 옆자리에 자우림 콘서트에 함께 갔던 친구가 앉아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한테 야간자율학습 끝나고 독서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갔던 그 콘서트 경험은 말할 수 없이 황홀했었지. 



음악이라는 매체는 그 자체로도 이토록 힘이 센데, 보스헤드폰은 그 효과 한층 더해주었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몰입었다. 슬프게도 노래 한곡이 채 끝나기 전에  멀리서 익숙한 멜로디가 겹쳐 들려왔다. 영화 <인셉션>에서 라비앙로즈가 흘러나오며 잠든 이의 꿈을 깨우듯, 나는 교실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아련한 종소리와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Bose QuietCompfort 45 headphones(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후로 이 제품에 대한 구매욕구가 샘솟았다. 마침 기존에 사용 중이던 애플(Apple) 에어팟 1세대의 왼쪽 기기에서 연결 불량 증상이 생긴 참이었다. 보스 헤드폰을 사고 싶었지만 나는 주로 헬스장이나 야외에서 달릴 때 음악을 듣기 때문에 이어폰을 사는 게 맞았다.(언젠가 여유가 되면 헤드폰 꼭 사리라.)




물건을 살 때 가성비를 따지는 편이다. 런 내가 이어폰 하나에 30만 원대의 비용을 소비한다는 건 사건이다. 나와 달리 남편은 물건 구입에 있어서 정반대의 타입. 그는 뭔가를 구입할 때면 꼭 제일 비싼 델을 사는 경향이 있다. 유복한 가정의 출신도 아니고 지금도 딱히 인데도 말이다. 마침 나의 생일즈음이어서 남편은 집 근처 백화점의 애플 프리즈비 매장으로 나를 데려갔고, 에어팟 프로 2세대를 사주었다. 검색해 보니 쿠팡 등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같은 제품이 4-5만 원가량 저렴했다(왜지?). 평소 았다면 남편에게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사자..' 속삭였겠지만, 생일이고 해서 토 달지 않고 감사히 받았다. 물건으로 인해 설렌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과연, 에어팟 프로 2세대의 노이즈캔슬링도 놀라웠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active noise cancelling)이라는 기능은 단순히 귀를 틀어 막아서 소음을 차단하는 패시브(passive) 방식의 소음 차단 기술과는 다르다. 이어폰에 장착된 마이크가 바깥소리를 흡수하여 내보냄으로써 귀에는 들어오지 않게 한다.(원리가 몹시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바깥소리를 들어야 할 때는 이 기능을 끄면 된다. 이어폰을 착용한 상태로 노이즈캔슬링을 끄면 마이크 때문인지 외부소음이 더욱 크게 잘 들린다.(보청기인가?)

AirPods Pro 2세대


(이미지 출처 :네이버)


에어팟 프로를 귀에 꽂고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활성화시키면 방음부스에 들어온 듯 잡음 사라진다. 만져질 듯 생생한 음악과 나만존재한다. 눈앞의 세상 어쩐지 뮤직비디오처럼 한층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보인다. 소리가 차단되면 거리감이 더해지고, 거리감으로 인해 대상 보는 방식이 바뀐다. 찰리채플린이 말하지 않았던가. 인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비행기를 타고 수천 피트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조금 전까지 골머리 앓던 일들이 별것 아니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아침에는 어쩐지 마음이 답답하여 헬스장에 가는 대신 강변을 5킬로 정도 달렸다. 달리기는 내가 나를 지키는 한 방편이다. 흐린 날이라 보사노바를 틀었다. 강변 산책길로 나가기 위해 집 앞 횡단보도 앞에 섰다. 도로의 잡음 쏙 뺀 <The Girl from Ipanema>를 듣고 있으니 곳은 더 이상 평소에 건너던 길이 아니었다. 저 길 끝에 강이 아니라 한가로운 이파네마 해변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익숙한 내 도시가 돌연 생경했다.


https://naver.me/GNU6D4Lb



하늘이 꾸물꾸물하더니 역시나 비가 시작되었다. 빗방울은 윽고 굵어졌고 내 바람막이를 적시기 시작했다. 주위에 산책하던 사람들은 우산을 펼쳐 들었다. 비는 데워진 내 몸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에어팟에 쳇베이커가 <Everything Happens to Me> 읊조리듯 부르고 있었다. 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달렸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 수군거리든 못들으면 그만이다. 

그래,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지. 내가 걱정하고 고민한다고 해서 달라질까. 뛰면서 나는 거대한 자유로움, 해방감, 충족감, 그리고 상쾌함을 느며  의연해졌다. 어쩐지 내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고민하던 일에 관해서는, 잘 해결되지 않더라도 아무 상관없고 생각했다.


https://naver.me/5zvVR5zb








매거진의 이전글 밤의 달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