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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r 23. 2023

밤의 달리기

일정표를 보니 다음 주 토요일이 마라톤대회 날이다. 별생각 없이 10km 코스를 신청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최근 1년간 그 정도 거리를 뛰어본 일이 없다. 문득 불안이 엄습했다. 완주.. 할 수 있겠지..?


요즘의 내 운동 루틴은 다음과 같다.


1. 러닝머신 3km 뛰기 (20분) - 주 5회

2. 부위별 근력운동(웨이트 트레이닝) (40분) - 주 5회

3. 수영강습(50분) - 주 4회

4. 요가수련(50분) - 주 3회


지난겨울방학부터 다시 시작한 운동을 휴직기간 동안 이어가는 중이다. PT수업 이후 피트니스에 재미를 붙여 식단과 중량 늘이기를 병행하느라 유산소 운동에는 소홀했다. (정확히는 트레이너 선생님이 달리기를 과하게 하면 근육이 손실되므로 줄이라고 하셨다.) 매일 수영장을 몇 바퀴 돌고는 있지만 달리기와는 결이 다르다. 한때는 야외 달리기에 심취해서 매일밤 밖에 5km를 달렸는데, 그 당시 나의 페이스는 꾸준히 올라갔었다. 마라톤 완주를 위한 예행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일요일 밤 저녁식사 후 러닝화를 신고 나섰다. 오늘 목표는 7km.




3월 중순, 밤 기온은 10도. 반소매 티셔츠에 윈드브레이커 한 장만 덧입고 밖으로 나오니 찬공기에 몸이 움츠려졌다. 다시들어가서 바꿔 입고 나올까 잠시 망설지만 머지않아 몸이 더워지리라는 걸 알기에, 부지런히 팔다리를 움직이며 뛰었다.


집 근처에 있는 강변 공원을 향해 달린다.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들으면 뛰는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지만 나는 주로 발라드나 재즈를 듣는다. 성시경과 아이유의 감미로운 목소리들으공원을 누볐다.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몰려온다. 숨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틈틈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모자를 쓰고 이어폰을 꽂고 달릴 때면 부끄러움이 작아진다. 어차피 어두워서 누군지 잘 보이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알아보면 뭐 어때.. 라며. 성시경의 태양계를 듣다가는 그 감미로운 멜로디에 녹아내릴 뻔했다. 오랜만에 들으니 더없이 감동적이었다. 나는 음악을 듣다가 곧잘 감동을 받는 편인데, 노래부르는 것도 좋아다는  문득 깨달았다. 마치 옷장 깊숙한 곳에 있던 옷을 꺼내 입었는데 주머니에서 수년 전 잃어버렸던 소중한 물건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득 집에 있는 8세 딸아이가 떠올랐다. 요즘 뉴진스의 ditto에 푹 빠진 이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이 노래를 부른다. 온종일 무의식적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이다. 가사도 완전히 모르는 채로 허밍으로 줄기차게 불러댄다. 밥 먹을 때도, 옷 갈아입을 때도, 다른 이야기하다가도 중간중간 쉬지 않고. 나는 옆에서 그걸 듣다가 정말이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되어서 "부탁인데 그 노래 그만 부르면 안 될까?" "밥 먹을 때 노래하는 거 아니야." "미안한데 엄마는 정말 그만 듣고 싶다" 라며 소했었다.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준 일이 없다. 아기였을 때 자장가 불러주기를 시도한 적은 있지만, 스스로 뭔가 부끄럽고 어색해서 그만두었다. 아이와 있을 때 대중가요를 함께 듣거나 흥얼거리는 일도 없으니 아마도 아이는 엄마가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딸아이에게 내가 남보다 조금 잘한다 싶은 것만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말로만 "잘하지 않아도 돼, 잘 못해도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해." 했지, 정작 내가 뭔가에 서툰 모습은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노래를 못하지만 노래를 좋아한다는 걸 보여줘 봐야겠다.




2km를 넘어서면 땀에 젖기 시작한다. 체온이 올라가고, 얼굴을 벌게진다. 달리는 감각이 몸에 완전히 익어 두 다리는 자동으로 박자 맞춰 움직이는 듯하다. 차가웠던 공기는 선선하다가 시원하다가 이제 더워졌다. 뭔가로 꽉 찼던 마음은 비워지고 이완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 있던 슬픔과 분노, 우울과 짜증과 권태가 휘발되고 동시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떤 힘이 차오른다. 그래 이거였지. 내가 매일같이 나가서 달리던 날들의 이유였다.


나이키런클럽 어플이 터닝포인트를 말해주면 반대방향으로 돌아서 뛴다. 기록에 연연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는 못하는 나는 차츰 속도를 올려본다. 그러다가 죽을 것 같이 숨이 차면 또 속도를 늦춘다. 속도를 매번 조절해야 하는 러닝머신보다 야외 달리기가 좋은 이유다.


벚나무 가지 끝에 꽃봉오리들이 숨 죽인채 맺혀있다. 일주일 안으로 필 듯하다. 작년 만개했던 벚꽃이 떠오른다. 올해는 또 얼마나 흐드러지게 예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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