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자사고에 재학 중이던 학생 A는 동급생 B를 2017년 5월께부터 2018년 1학기 초까지 지속적으로 괴롭혔습니다. “돼지 XX”, “빨갱이 XX”, “더러우니까 꺼져라”, “넌 돼지라 냄새가 난다” 등의 모욕적인 발언으로 언어폭력을 행사했고, 급식실에 점심을 먹으러 온 B를 내쫓았으며, B를 동아리에서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B는 2018년 3월 학교에 이 일을 신고하였습니다. 사실을 확인한 학교 측은 A에게 강제전학·서면사과·특별교육 이수 10시간·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10시간 처분을 내렸습니다. 강제전학이라는 처분은 퇴학 다음으로 높은 수준의 처분입니다. A의 죄질이 얼마나 나빴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의 부모는 전학 조처에 불복하여 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고, 조정위는 같은 해 5월 전학 취소 재심결정을 내립니다. 그러자 피해 학생 B 쪽이 다시 이에 불복해 재심 청구를 했고, 학교 쪽은 다시 A에게 전학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A의 아버지는 같은 해 7월 00 지방법원에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과, 징계처분 효력을 판결 선고 때까지 정지해 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냅니다.
A의 아버지는 “선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바로 전학 조처를 내린 것은 가혹하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A의 전학처분이 타당하다고 봤습니다. A 측은 '별명을 부른 것에 불과하다', '피해 학생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다' 등의 이유로 학교 폭력을 부인하였고, 가장 가벼운 조치인 서면사과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학교 자치위는 기말고사 일정을 고려해 ‘시험 전 학교 봉사와 시험 후 출석 정지 조치’를 결정했지만, A의 아버지는 이 조지가 A의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민사상 가처분을 통해 학교봉사 조치 이행을 유예했습니다.
전학 조처에 대해 다투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A는 서면사과나 특별교육 이수 등 다른 조처들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제대로 반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A 쪽의 항소는 대법원까지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어찌 됐든결과적로는 그 과정이 길어져서, A는 전학 처분을 받은 지 1년 가까이 지난 2019년 2월에서야 다른 고교로 전학했습니다.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1년 동안 분리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은 명백한 2차 피해입니다.
피해자 B는 "A가 자기가 변호사 선임해서 무죄판결받았다고 떠들고 다니고, 애들은 그걸 듣고 웃고. 정말 악마인 것 같다”라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B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공황장애 등을 진단받았습니다.그런 상황에 A의 전학 조처가 취해지지 않으면서 가해자와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A와 마주칠 때마다 B는 극심한 불안 등 트라우마 증상을 보였으며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실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1년 후 다른 학교로 강제전학 간 A는 이듬해 정시로 서울대에 진학했지요.
A의 아버지는 검찰 출신으로 법행정과 절차에 누구보다 밝았습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A의 진술서도 대신 써주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돌리는 내용 위주여서 학교에서 '진술서를 다시 쓰라'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는 곤경에 처한 자식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며'끝장 소송'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 자식의 과오가 명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처분에 불복하고 재심 청구를 하며 최대한 시간을 끌었습니다.제 자식에게 고통받은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와 계속 마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행정소송에서 A 측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폭력이라고 명백하게 보기 어렵다. (피해학생이) 충분히 회피가 가능했던 것 같은데 왜 그런 게 없었는지... 말이 심하긴 하지만 남학생들 사이에서 서로 욕을 하거나 하는 일은 많이 하는 일인데..."
"어떤 언어폭력으로 인해서 피해 학생이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저희가 납득할 수가 없다. 00 새끼, 00 이런 말은 욕은 될 수 있지만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황폐화될 수 있는 행위가 될 수 있는지"
본인의 자식이 폭력의 피해자였다면 과연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었을까요.
A의 아버지는 자식에게'네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 끝까지 아니라고 해야 한다.'라고 가르친 것과 같습니다. 그런 태도로일관해야 조금이라도 화를 면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학생징계조정위원회 따위의 결정? 이 아빠는 불복한다.' 하는 권력자의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살면서 실수나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그것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부모는 그 단순한 사실을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 아이의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가해사실이 기록될까 봐, 그것이 진학에 걸림돌이 될까 봐, 그 불이익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혈안이 된 부모라니요.
부모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걸까요. 제 자식 감싸지 않는 부모 없다고들 하지만 제 자식이 감싸느라 남의 자식의 안위는 내팽개쳐도 되는 걸까요. 그런 부모를 보며 자란 자식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될까요. 아, 애초에 삶의 자세 같은 건 그들의 관심사가 아닌 걸까요. 좋은 대학 나와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상관없는 걸까요. 그 대단하신 A의 아버지에게 묻고 싶습니다.
피해학생 B를 직접 알지 못하지만 그가 겪었을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롭습니다.아무 잘못도 없이 누군가로부터 모욕과 경멸을 당했던 성장기의 경험은 앞으로의 삶에 어떻게 작용할까요. B도 학업 성적이 좋았던 학생이었지만, 정신과적 치료를 오가며 진학에는 실패했다고 합니다. 동일한 사건의 가해자는 정시로 서울대를 갔다니 놀랍습니다. 수능을 굉장히 잘 봤다는 것인데, 그 명석한 두뇌와 강한(?)멘탈에다가 국내최고대학출신이라는 타이틀까지 두르고 사회에 나오겠지요. 이렇게 키워진 '인재'들이 좋은 대학을 가고, 시험에 합격하는 걸 볼 때마다 저는 불안합니다. 그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 어떤 일을 할지, 실로 두렵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서울대 입학처의 맹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부당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지만,그로 인한 피해자가 우리 아이들일 때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려진 대로우리나라 십 대들의 행복지수는 극히 낮습니다. 경쟁적 시스템과 사회구조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은 가만히 놔두어도 사는 게 힘이 듭니다.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을 더 잘 보호해 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아닐까요.이런 일이 생기고, 공론화되는 것을 계기로 우리 삶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정치싸움의 도구로 이 사건을 이용하려 하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제도적 허점이 있다면 그 공백을 채워 넣을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