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Jun 16. 2023

나의 게으른 소년

광고는 아니구요

거실 안락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잠었다. 단잠이었다.


짙은 브라운 컬러의 1인용 리클라이너는 '게으른 소년'이라는 미국 브랜드의 제품인데, 거대한 사이즈 다소 투박스러운 파이다. 오래전 우연히 백화점 가구 매장에서 한번 앉아 보았는데, 그 편안함에 반해 기꺼이 구매하였다. 1인용 소파치고 의 제품이었지만, 에 대한 강렬한 끌림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인테리어 파괴자라는 악명 붙어있는 아이를 8년째 소유해오고 있는 건 이제껏 이보다 편안한 의자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으른 소년 위에 앉아 레그레스트 펼치고 체중을 뒤로 실으면 180도에 가까운 각도로 변신한다. 체의 곡선에 맞춘 듯한 푹신한 침대가 따로 없다. 하나를 무릎에 올려놓고 그 위에 책을 펼치면 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독서스팟이 되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잠들어버려서 정작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책을 들고 이 의자 위로 올라간다는 건 잠들지도 모른다 혹은 잠들어도 괜찮다라고 여기는 일이다. 은 이유로 급히 읽어내야 할 텍스트를 들고 이 의자에 앉는 건 곤란하다. (책은 자고로 도서관 열람실 의자에서 가장 잘 읽히는 법이다.) 해야 할 일이 사방에 산적해 있는 학기중일 때보다 한가로운 휴직기간 게으른 소년 더 친밀해지는 닭이다.



만삭의 몸이었던 두 번의 시절, 쉬이 잠들지 못하던 내가 퍽 의지한 것도 이 의자였다. 배불뚝이던 나는 의자 위에 모로 누워 한쪽 다리를 암레스트에 올려놓고 서야 잠들었다. 이가 어난 후에도 수유 때, 트림시킬 때, 아기 등을 토닥거리며 이 흔들의자에 밤낮으로 앉아있었으니 나는 게으른 소년에게 참으로 많은 순간빚져왔다.

 


고백하건대, 작년 이사 즈음 소파버릴까 말까 잠시 고민했었다. 우연히 지인의 집에서 어느 아름다운 안락의자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마치 미술관에 전시된 오브제인 듯 우아하고 세련된 자태를 뽐내던 그 의자. 북유럽 장인이 최고급 가죽으로 제작다는 그 아이의 천문학적인 가격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주인장의 허락을 얻어 조심스레 앉아보았더니 어쩐지 황송, 낯선 편안함이 있었다. 와 최고급 천연가죽은 촉감과 향도 다른 것 같아-. 감탄하며 에 돌아다. 그날 거실에서 마주한 내 소파는 뭔가 처연해 보였다. 몸을 뉘이니 예의 익숙한 포근함이 나를 감쌌다. 천연가죽 냄새 대신 우리 집 냄새, 우리 가족의 살냄새 같은 것이 났다.



사물에도 영혼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래도 난 투박하고 못생긴 나의 게으른 소년을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재활용품 센터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을 의자상상하면, 그함께했던 나의 시절도 함께 증발해 버릴 것 같아서일까. 그 장면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애닯고 슬퍼진다. 소파에서 낮잠을 자다가 깨서는, 애먼 소파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던 오늘 오후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의 노이즈캔슬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