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아빠는 올해 환갑이시다. 예전처럼 잔치를 크게 하지는 않았지만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 따뜻하게 쉬다 왔다. 맛있는 것도 먹고 늦가을의 경치도 구경하고 술도 한 잔 걸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의 환갑 기념 여행은 사실 취소될 뻔했다. 작년 가을에 심장수술을 받으신 할아버지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올여름에도 할아버지 일로 미리부터 계획했던 가족 여행을 취소한 적이 있어서, 이번 여행만큼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집을 벗어난 곳에서 고요한 하룻밤의 휴식이 필요했다. 특히 아빠에게 말이다. 물론 나머지 가족들도 감정을 함께 공유해온 만큼 위로받는 시간이 필요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하룻밤 자고 오는 정도는 할아버지도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할아버지의 위중한 상태가 슬프지만 변하지 않는 상수로 일상에 자리를 잡았다. 불확실한 상황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버티기에는 숨이 막히기에, 우리는 애써 쓰디쓴 현실을 삼켜가며 지내고 있다. 아빠에게 올해는 환갑의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어려운 한 해였을 것이다. 아빠의 첫째 딸은 내년에 결혼을 하고, 아빠의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계시니까.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아들로서 얽혀버린 역할에 그 마음이 어떨지 이해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 드라마 <지리산>을 봤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이 많았다. 자꾸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안마의자에 앉아 그 장면을 같이 보고 있는 아빠의 표정을 차마 들여다볼 용기가 안 났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죽음이 충격적인 슬픔이라면, 오래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는 죽음은 사무치게 시리다. 다가올 현실을 그리며 최대한 덤덤해지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리셋되어 버린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60년을 살아도 쉽지 않은 게 인생이다. 이제 그 절반을 살아가고 있는 풋내기인 내가 할 소리인가 싶지만, 그 당사자인 아빠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느껴진다. 무뎌질 법한데도 언제나 처음처럼 고달픈 생의 모습이 아빠의 주름살에 빼곡히 담겨있다. 기술로 수명이 연장되는 100세 시대라지만 환갑은 여전히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생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새로운 가정을 꾸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려는 자녀 사이에서 울면서 웃을 줄 알아야 하는 나이, 그게 바로 환갑의 무게인 것이다.
아빠의 세 번째 스무 살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