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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Oct 16. 2021

잃지 않는 투자

삶에도 적용될까


투자의 세계에선 이미 큰 부를 축적한 사람일수록 '잃지 않는 투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나 또한 (소소하게) 투자를 할 때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까지는 아니다. 주식을 사도 대형주를 선호하고, 집을 사도 하방경직성이 강한 매물을 좋아한다. 가족 대대로 대담하지 않은, 새가슴을 자랑한다. 가끔은 오기 부리는 것처럼 과감할 때가 있긴 하다. 안전하게 살며 모아두었던 기(氣)를 한 번에 써버리는 느낌이랄까? 단타가 아닌 장투로 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겠다. 투자하고 있는 코인의 종류는 3~4가지인데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계속 가지고 있다. 워낙 등락이 심한 시장이다 보니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현재 가격보다는 코인 개수를 늘려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내게는 코인 투자가 29년 인생에서 일종의 모험인 셈이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주식을 한다고 하면 놀란다. 이미지가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라 예적금만 할 것 같은데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다. 코로나 이후로 유동성이 풀리면서 모두가 투자자가 된 지금은 별로 이상할 게 없지만, 2017~2019년도만 해도 백만, 천만 단위로 주식을 하는 게 나의 반전 모습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주식을 하면서 잃은 적도 많고 수익을 본 적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젊은 시절의 투자는 손해를 보아도 괘념치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은 많고 투자는 평생 해야 하니, 비교적 저렴한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며 손실의 아픔을 빡빡 지운다.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흔적이 옅어지는 게 인간의 장점 아니겠나. 대신 매번 수업료만 내다가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항상 리마인드 하려고 한다.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뭐든 시도해보는 것. 자신만의 투자의 길을 닦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화폐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떨어졌음에도 아직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조금씩 견문을 넓혀가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합리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를 내지 못한 건 100% 내 책임이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개선해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투자에 한번 실패했다고 거기서 멈춘다면 이 세상에 남아나는 투자 방법이 없을 것이다. 내게 맞는 투자스타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 한 번의 실패로 해당 분야의 투자를 포기하는 건 자신의 성장에 한계를 긋는 일이다. 부동산 투자에 한 번 실패했어도, 주식 투자에 한 번 실패했어도, 코인 투자에 한 번 실패했어도, 외환 투자에 한 번 실패했어도, 그 경험치를 딛고 다시 한 번 시도해본다. 나는 이런 방식의 모험을 하고자 한다.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삶을 비켜갔어요. 한 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도 못했고 잃지도 않았어요.

-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모험을 하지 않는 삶은 얻는 것도 없고 잃는 것도 없다. 살면서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것이라는 말에 뜨끔했다. 위에서 설명한 투자 방식이 나만의 모험이라고 생각하지만, 투자 외의 것에서 모험을 하고 있느냐, 자문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지금의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험은 무엇일까. 발칙한 미래를 꿈꾸며 나만의 청사진을 그려본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구름은 일생이 모험이다. 다양한 모양을 한 채로 자유롭게 하늘을 떠돈다. 그만큼 느끼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을 것이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동반하지만, 희망과 기대도 함께 따라온다. 미래가 확정 값이라면 어떤 희망이나 기대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우리의 생은 불완전하고 불확실해서 생기를 띤다. 각자가 이 세상을 모험하면서 저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어딘가에 적응해서 평생 그렇게만 산다면 인간보다는 기계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인간은 능력이 좋아 반복되는 행위를 완벽히 숙달하기 때문이다. 꿈틀거리는 모험력을 숨겨두지 말자. 부끄러워하는 그 힘을 조용히 꺼내 마음껏 부풀려보자. 우리 앞에 어떤 생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현실이라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더라도 상상이라는 내면세계를 잃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외부 세계를 자신이 주체적으로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오직 적응해야 하는 곳으로만 여긴다면, 그의 개인성은 사라지며 삶은 무의미하고 무익해질 것이다. 공상이라는 내면세계는 생물학적 부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환경에 아주 잘 적응하고 아무 불만 없이 행복한 사람이라도, 그 내면에서는 상상력이 꿈틀거린다.

- 앤서니 스토, <고독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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