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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림 Sep 25. 2024

대실

(1)

여자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벌어진 턱이 가늘게 떨리다 갑자기 오므라들었다. 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질 때 여자의 눈도 번쩍 뜨였다. 여자의 반대편으로 누운 남자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내가 방금 엄마라고 했지?” 

아이의 날카로운 비명이 여자의 귓가에 이명처럼 맴돌았다. 남자가 천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무슨 말을 했지만, 여자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몇 시야?” 

“10분이나 됐나.”

여자는 남자를 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몇 번 심호흡을 하자 현실감각이 성큼성큼 돌아왔다. 

“나 물 좀.”

남자가 머리맡에서 리모컨을 찾아 버튼을 이리저리 눌렀다. 욕실과 침대 위, 현관 쪽 전등이 차례로 켜졌다 꺼지더니 마침내 화장대 위에 희미한 붉은색 조명만 남았다. 팬티 차림의 남자가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냈다. 

“상담을 받아보라니까. 진짜로.”

여자는 남자가 건넨 물을 받아 마시고, 반쯤 남은 플라스틱병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 놓았다.  

쓰러지듯 누운 여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남자가 헛기침 끝에 말했다.  

“자기 잘못도 아니잖아. 그러다 병 나.”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가는 차 안에서 원장도 같은 말을 했다. 잘못한 게 없으니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면 된다고. 그러나 그것은 여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운전대 앞에 바짝 앉은 원장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푹 좀 잤으면 좋겠다.” 

여자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남자는 불을 끄고 이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은 후 오른 다리로 천천히 여자의 허리를 감쌌다. 점멸하는 네온사인 불빛이 흰 커튼을 통과해 방안에 흘러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거울로 여자는 자기 얼굴이 파랗게, 빨갛게 다시 파랗게 규칙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주차부스 안의 남자가 원장에게 물었다.

“그... 형사님을 만나러 왔어요.”

“어디 형사님이요?”

원장은 여자가 들고 있던 핸드백을 낚아채 갔다. 안을 뒤적거리는 동안 영수증, 명함, 립스틱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그녀의 베이지색 원피스 위로 떨어져 내렸다. 사이드미러에 경찰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가 운전석 쪽으로 몸을 기울여 말했다. 

“여청팀이요”

“저기 오른쪽 건물 2층으로 가세요. 주차는 그 앞에 하시면 돼요.”

차단기가 올라간 뒤에도 원장은 떨어진 물건을 주워 담다가 주차요원이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차를 몰았다. 

주차장 맞은편에는 최근에 지어진 것 같은 회색 대리석 빌딩이 있었고, 건물 옆 후미진 곳에서 남자들 몇 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원장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복도 끝에 ‘여성성소년팀’이라 쓰인 명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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