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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r 10. 2023

헤르만 헤세 덕후라면 즐거울 헤세 박물관

검은 숲 헤르만 헤세 생가에 다녀온 이야기

독일에서 지내던 어느 날, 친구와 이야기하다 인상 깊게 읽은 독일 문학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어릴 때 헤르만 헤세의 책을 좋아해 전부 읽었다는 말을 하며 생각해보니 유독 헤세의 소설 속에 슈투트가르트나 튀빙엔이 많이 등장한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대체 헤세가 어디서 태어난 건지 찾아보니 당시 내가 살던 튀빙엔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독일 민담 등에 자주 등장하는 검은 숲 속 칼브(Calw)라는 곳인데 튀빙엔에서 호흐브(Horb)라는 작은 마을까지 가는 RB 기차를 타고 호흐브에서 포르츠하임으로 향하는 RB 기차로 갈아타면 한 시간 반만에 도착하고 학생 카드 덕에 요금은 호흐브에서부터 내면 되니까 편도 10유로 남짓이 든다는 계산이 섰다.

*RB: 우리나라의 비둘기호나 통일호와 같이, 아주 작은 역 포함 모든 역에 정차하고 시골까지 들어가는 기차. 슈투트가르트-튀빙엔 기준 다른 기차보다 30분가량이 더 걸린다.


편도 1시간 반에 10유로 정도라면 안 갈 이유가 없지! 박물관을 구경하고 박물관 주변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고 돌아와 튀빙엔에서 밥을 먹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구글맵을 대충 둘러보니 상주인구는 2만 명 뿐인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관광객들이 꽤 많이 들러서 주변 카페도 잘 되는 듯했다.


헤르만 헤세가 태어난 생가

여기가 헤세가 태어난 생가라고 하는데 박물관은 몇 걸음 더 가야 있다. 그렇지만 헤세가 생전에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실제 이 집에 산 기간이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고, 이곳을 떠난 후로 돌아온 적도 없다. 그나저나 어쩐지 등장인물 중에 유독 튀빙엔, 슈투트가르트가 고향인 사람이 많더라니 튀빙엔은 물론이고 슈투트가르트의 한 지역인 바트 칸슈타트에서도 몇 년을 살았다고 한다. 어릴 때 헤세의 책을 아주 열심히 읽었던 애독자로서 내가 일상적으로 걸어다니는 길을 언젠가 헤세가 걸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벅찬 마음이 들었다.


전 세계에 번역되어 나온 헤르만 헤세의 소설

매표소에 가니 학생이면 영어, 독일어 오디오가이드가 무료라고 했지만 그때의 어리석은 나는 오디오가이드는 눈앞의 자료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이렇게 느껴야 한다는 해답을 제시해서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가이드를 받지 않아 놓친 부분이 많다. 박물관에 자료가 이렇게 많을 줄도 몰랐고, 영어 설명이 이렇게 부실할 줄도 몰랐기 때문에 오디오가이드를 거절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어쩐지 매표소에서 무료고 최근에 재녹음해서 설명도 더 자세한데 왜 안 받아가냐며 아주 안타까워했는데 그 분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새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가장 인기있는 구절 ‘새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투쟁한다’와 그 삽화다. 헤세가 소설을 써내려가며 이 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그림을 직접 그렸다고 한다.


헤세의 작업실 겸 서재 사진

헤세의 육필 원고랑 토마스 만과 교환한 편지가 많이 전시되어 있어 독일어를 읽을 줄 아는 상태에서 갔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당대의 대문호 둘이 무슨 내용으로 수다를 떨었는지 궁금한데 독일어 실력이 부족해 못 읽어서 아쉬웠다. 어디서 읽었는데 당대 독일 작가들 사이에는 만연체가 유행해서 헤르만 헤세와 토마스 만은 누가 더 긴 문장을 쓰는지 편지로 대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위 사진의 제일 왼쪽에는 헤세가 수집한 나비들이 벽에 걸려 있는데 인도네시아에 살던 시절 나비 수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가 연출했던 연극을 테마로 한 방

저 방에는 헤르만 헤세의 연대기와 사용했던 타자기, 출판사에서 원고를 수정하기 전 가장 첫 완성본, 헤세가 살았던 곳에서 그린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어 즐겁게 봤다. 위 사진 속 왼쪽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은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던 헤세를 방문한 지인 중 어느 화가가 그린 헤세 부부와 인도네시아의 풍경이고 오른쪽 벽면의 사진은 헤세가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찍었다.


헤세발 프리드리히샤펜의 소인이 찍혀 항공편으로 미국에 발송된 편지봉투

박물관은 헤세의 생애를 이루는 연대기별로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어 좋았다. 튀빙엔에 산다면 가볼 만하다! 다만 RE도 아닌 RB를 타고 가야 하고 학생 기준으로는 편도 교통비로 10,50€가 들지만 일반인이라면 편도 20€인데다 박물관 입장료와 오디오가이드 대여비까지 붙으니 돈이 꽤 드는 데 비해 독일어를 못 한다면 벽에 붙어 있는 설명은 다 생략해야 하고 박물관의 규모가 다소 작아서 학생이 아니라 일반인으로서 가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듣기로는 헤르만 헤세가 작고 전 마지막으로 살았던 스위스 호숫가의 생가에 더 많은 자료가 있다고들 한다.


튀빙엔에 있는 헤르만 헤세가 운영했던 고서점
여기저기 공사중이었던 구시가

헤르만 헤세 생가를 중심으로 해서 관광지로 발돋움하려는 시도인지 건물마다 저런 모양으로 외관 리모델링을 하느라 온통 공사중이었다. 그 덕에 인구 2만 명뿐인 작은 마을 칼브는 아주 예뻤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빵집 겸 카페
튀빙엔에는 없던 바나나 롤케잌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하늘이 개어서 찍은 사진

지금 이 글을 쓰느라 헤세 박물관에 다녀온 날 적은 일기를 다시 들춰보고 있으니 그 때 좋아하는 작가가 생전에 남긴 흔적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떠오르고 여기까지 기차를 타고 가며 봤던 풍경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좋다.


Hermann Hesse Museum


구글맵에 헤세 박물관을 검색해봤는데 별점이 1점밖에 안 되는 것이 놀랍다! 그 정도는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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