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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r 07. 2023

비엔나 벨베데레에서의 에곤 쉴레 전시회

2019.2 « Pathways to a Collection »

키스 그림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20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에곤 쉴레의 전시회가 벨베데레에서 열린다고 해서 전시회가 끝나기 직전에 급히 비행기를 예매해 다녀왔다.​


특히 흐린 날씨의 벨베데레 하궁

클림트의 키스를 포함한 유명한 그림들이 있는 벨베데레 상궁(Upper Belvedere) 대신 위 사진 속의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하궁에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하궁의 내부는 어떨지 궁금했는데 과연 상궁만큼이나 화려한 샹들리에, 벽화와 천장화, 대리석 바닥과 기둥에다 황금을 아낌없이 바른 방도 있었다.


궁에 들어가니 이런 큰 홀이 나왔고,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문을 통과해 미로처럼 얽힌 복도와 방 몇 개를 지나니 드디어 전시장이 나왔다. 20점이 채 안 되는 작품만 전시되는 아주 작은 규모의 전시회라는 언질을 받고 왔지만 오디오가이드의 설명이 아주 자세했고 에곤 쉴레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각종 서신과 전시된 그림에 얽힌 일화나 사진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회장 내부 / 위: 직접 촬영, 아래: 벨베데레 뮤지엄 홈페이지

이 전시회를 통해 에곤 쉴레가 그림을 그릴 때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아래 그림은 여러 번 덧칠하기도 했고 연필로 스케치했다가 이렇게 그린 것을 대부분 지웠다 새로 그린 후 펜으로 윤곽선을 더 진하게 그리고 채색한 것을 방사선 사진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자료가 있었다.


푸른 강 위의 도시, 1911 / 사진출처: 벨베데레 뮤지엄

에디트와 결혼하기 전 연인 왈리와 함께 살았던 체코의 체스키 크룸코프를 그린 이 그림은 여러 번 수정했는데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관람객으로서 그냥 봐서는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기 어렵지만 전시된 엑스레이 분석을 통해 강물의 색이라든가, 전체적인 구도나 지붕의 색, 빛의 방향 등을 세심하게 고려해 수년에 걸친 손길이 닿은 그림임을 알 수 있었다.


왈리 노이칠의 초상화 (1912), 나무에 오일, 레오폴트 미술관 소장

부인 에디트와 결혼하기 전에 사귀었던 애인인 왈리(본명은 발부르가 노이칠)를 그린 그림인데 왈리는 에곤 쉴레를 만나기 전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모델로 서기도 했다. 1911년 빈에서 왈리와 에곤 쉴레가 만나 연인 관계가 되었고 이후 1915년에 결별할 때까지 왈리는 쉴레가 그린 많은 그림의 모델이 되었다. 전시회의 설명에 따르면 왈리는 금발의 미인인데다 쉴레를 매우 사랑했지만 매우 고집이 세고 변덕스럽고 불같은 성격을 가져 둘은 자주 싸웠고 쉴레가 왈리의 곁에서 정신적으로 편안하지 못했다고 한다. 왈리는 쉴레와 결별한 이후 간호사가 되어 야전 병원에 차출되었고 그곳에서 전염병에 걸려 1917년 젊은 나이에 죽었다.


Four Trees (1917), 캔버스에 오일, 벨베데레 소장

이 전시회에서 가장 좋아했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아르누보 스타일로 에곤 쉴레가 그린 몇 안 되는 풍경화인데다 주로 그렸던 인상주의 대신 새로운 시도를 한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화가의 부인 에디트 쉴레 (1917), 종이에 크레파스, 벨베데레 소장

이 전시회가 아닌, 에곤 쉴레의 작품 대다수를 전시하고 있으며 에곤 쉴레의 생애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는 빈 레오폴트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에곤 쉴레는 왈리와 연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던 당시인 1914년에 에디트를 만났는데 온화한 성격의 에디트에게 빠르게 빠져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왈리와 달리 에디트는 중상류층에 속하는 부유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라 쉴레가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레오폴트 미술관에 따르면 에곤 쉴레가 에디트와의 결혼 후에는 모든 염문을 청산하고 오직 에디트에게만 충실했으며 에디트를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에곤 쉴레가 남긴 작품들 중 부인 에디트를 그린 작품이 매우 많다.


Dr. Hugo Koller (1918), 캔버스에 오일, 벨베데레 소장

그림 속 인물인 휴고 콜러 박사는 의사이자 물리학자로 엄청난 애서가라 박사의 책에 대한 사랑을 그림 속에 표현하기 위해 배경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무릎에도 책을 펼친 모습으로 그렸다. 이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에곤 쉴레는 초상화 작업을 할 때 대상의 성격적 개성을 최대한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Leopold & Marie Czihaczek의 집 내부 (1907), 카드보드에 오일

에곤 쉴레는 배경을 과감히 생략한 인물화로 유명해 이렇게 실내를 그린 그림도 남아 있는 것이 다소 의외였는데 나뭇바닥에 비치는 빛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고흐의 해바라기에 대한 오마주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좋아하는데 에곤 쉴레의 스타일로 그린 해바라기도 신선했다.


Franz Martin Haberditzl 박사의 초상 (1917) / 출처: 벨베데레 뮤지엄

에곤 쉴레에게 위 해바라기 그림을 의뢰해 초상 속에서도 해바라기 그림을 들고 있다.


불과 20점이 채 안 되는 그림이 있는 아주 작은 전시회지만 부인인 에디트 쉴레를 그린 에곤 쉴레의 대표작 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풍경화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그린 해바라기처럼 새로운 시도를 한 그림이 많아서 좋았다. 엑스레이를 이용해 화가가 여러 번 수정한 최종본 이전에 원래 의도했던 그림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나 그림을 정교하게 복제해 겹겹이 올라간 물감의 질감을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한 부분도 에곤 쉴레의 상설전이 열리는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 등 다른 전시회에서 경험할 수 없어 즐겁게 보고 왔다.


이 전시회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면 (영문)

https://www.belvedere.at/en/egon-schi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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