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쿠프에서 Muse Simulation Theory 월드투어 뛰기
어느 날 친구가 여섯 달 뒤에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하는 영국 락밴드 뮤즈의 콘서트에 같이 가자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 편도 1시간 반을 대중교통에 갇혀 온갖 락밴드의 음악을 들었는데 뮤즈도 그 중 하나라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밴드다. 뮤즈는 바로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주제곡인 ‘Survival’을 부른 밴드인데 대학교 때 모든 수업에서 매주 치뤄지는 퀴즈지옥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로 이 노래를 특히 자주 들었다. 서바이벌을 듣던 날들이 이미 과거가 된 이야기라 다행이다
티켓팅에 성공한 친구에게 티켓 보험료까지 합해 105유로를 주고 기나긴 6개월이 지나 드디어 6월 말이 되어 비행기를 탔다. 너무 설레서 전날 밤에 잠을 못 잔 탓에 퀭한 눈을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미 한 번 여행을 떠나려다 비행기를 놓친 전적이 있는 나를 아는 친구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비행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했다.
위의 비행기 탑승 사진을 보니 독일에서 오전 10시 30분이 조금 넘어 비행기가 이륙했는데 날씨앱을 보니 비가 쏟아진다고 했지만 공항에는 이미 비가 그쳐 있었다. 이때는 크라쿠프 시내와 공항은 조금 떨어져 있으니 시내에는 비가 오고 있나보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공항철도를 타러 갔다. 독일에서 확인한 일기예보에서는 토요일부터 크라쿠프를 떠나는 월요일 오전까지 계속 비가 온다고 해서 우산을 챙겨오고 선글라스는 집에 두고 왔는데, 이때는 비가 전혀 오지 않아 땡볕 아래서 고통받을 미래를 몰랐다…
기차 안에서 뮤즈의 음악을 복습하다 보니 중앙역에 도착해 역과 연결되어 있는 쇼핑몰의 카페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친구와 만났다. 기차에 있을 때는 비가 쏟아지더니 내릴 때가 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친구가 예약해 둔 숙소로 가는 길에 나와 친구 둘 다 땀에 흠뻑 젖어 샤워를 해야만 했다.
오후 6시에 공연이 시작된다고 했지만 오랜 뮤즈 팬이었던 친구는 꼭 무대 제일 앞에서 공연을 봐야 한다며 공연 시작 네 시간 전에 줄을 서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지만 계획형 사람과 함께 여행하면 정말 편하다! 극강의 계획형인 엄마와 하는 여행과 더불어 이 친구와 뮤즈 콘서트에 간 것을 평생 가장 편했던 여행으로 꼽고 있다. 친구가 숙소에서부터 식사할 곳, 관광할 곳을 다 찾아두고 콘서트에 언제쯤 어떻게 가면 좋을지도 전부 계획해둬서 뇌를 비우고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예정되었던 6시가 아닌 7시가 되어 드디어 무대에 불이 켜졌다. 이때쯤 나는 수면 부족에다 약한 탈수에 시달려 살짝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 공연 같은 건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테러 위험이 있다며 물통은 공연장 입장 전에 전부 압수당해서 물 한 방울이 절실해지고 있었다.
좋은 무대였는데 사실 나는 긴 기다림과 상기한 이유로 바로 앞의 관객차단용 펜스를 붙들고 잠들어서 이 밴드가 퇴장할 때 깨어났다… 락 콘서트에서 잠이 드는 나도 참 대단하다! 미안해요 올어스인러브!
게스트 밴드가 한 시간 동안 공연을 하고 퇴장한 이후 30분이 지나니 다시 무대에 불이 켜졌다. 긴장돼서 심장이 두근두근댔다!
내 독일생활을 구원한 매드니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녹음해왔다면 2023년의 내가 기뻐했을 텐데, 2019년의 나는 그만 음악감상에 정신이 팔려 인스타그램 과시용 1분 영상만 찍고는 폰을 내려뒀던 것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친구와 나를 제외하면 다들 옷도 맞춰오고 응원도구도 챙겨왔길래 공연장을 나서며 결국 한 커플을 붙들고 셔츠와 도구를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봤다. 아마존에서 뮤즈 시뮬레이션 띠어리 월드 투어를 검색하면 다 나온다고 했다. 다음엔 꼭 풀세트로 맞춰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무대에서 내려와서 맨 앞줄 관객들의 손도 잡아줘서 아주 황송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내가 Muse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인 Mercy를 들으며 지금 공연이 끝나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았다!
공연이 끝나니 플레이리스트를 막 흩뿌려서 옆에 있던 러시아 사람이 낚아챈 걸 부탁해서 찍어 왔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허무했는데 친구와 옆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미친 듯 뛰고 노래불러서 녹초가 되어 그 허무함에 쓸려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너무 좋은 공연이라 다음에 언젠가 또 뮤즈 공연에 스탠딩으로 와서 네 시간이 넘는 기다림을 감수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을 마치니 벌써 밤 11시가 넘은데다 1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우버를 잡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내가 잡은 건 아니지만 친구 덕에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우버를 잡아 시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친구와 KFC에서 배를 채운 후 슈퍼마켓에서 아침식사로 먹을 것들을 좀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나: 슈퍼마켓이 자정에 영업을 해…????? 이렇게 늦었는데 길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친구: Welcome to Krakow.
다음 날 아침식사로 친구가 추천하는 폴란드 전통음식인 감자가 든 만두, 피에로기를 먹었다. 폴란드는 맥주로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친구는 주류를 혐오하는 사람이라 나에게 뭐라 하지는 않아도 맥주를 주문하는 게 눈치가 보여 물을 마셨다.
친구: 맛있긴 한데 우리 엄마가 만든 것보단 맛없어
나: 원래 식당 음식이 엄마가 만든 것보다 맛있기가 힘들지 않나?
그래도 난 정말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다음날 또 가서 똑같은 피에로기를 주문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