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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우 Apr 09. 2024

회사가 망했다고 내 인생까지
망한 건 아니다

회사는 내가 아니다. 나도 회사가 아니다

2023년 11월 초, 대표님이 우리 팀원들을 회의실에 불러 모았다. 여느 때와 달리 왠지 모를 스산함이 느껴졌다.


우리 회사가 11월 말을 끝으로 폐업될 예정이에요



나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이 말을 듣기 약 2, 3달 전부터 회사의 경영 상황이 부정적인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감지했었다. 회계부서의 자료를 들여다볼 수 없어 객관적인 확신은 부족했으나 적어도 내가 맡은 업무와 관련된 데이터만으로도 상황을 인지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더라도 유쾌할 수는 없었다. 일자리가 없어질 예정인 직장인에게 한 줌의 의욕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때부터 약 한 달 동안은 회사원인 듯 회사원 아닌 회사원 같은 생활을 했다. 폐업은 확정됐지만 여전히 할 일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여느 때처럼 일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다만 예전보다 업무량은 확연히 줄었고 남는 시간에 자유롭게 구직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5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점에 난 여전히 '무직'이다.




남아도는 시간은 신의 선물이 아니다


회사를 다니며 안정적인 급여를 받다가 자의든 타의든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고정적인 수입이 끊긴다. 퇴직금이 있지만 일시적이고 실업급여는 법에 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일정 기간 수령할 수 있지만 근로소득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며 받는 수입과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내가 스스로 일을 해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럽다. 시간적으로 자유롭고 고용센터에서 정한 구직 활동의 요건을 충족하면 실업급여도 나오니 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규율과 통제력을 상실하는 순간 허무와 무기력, 좌절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시간이 많다고 '난 자유야'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 과거에 스스로 일을 그만두고 1년 동안 쉰 적이 있다. 그때 상실의 늪에 빠져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잘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때때로 늪에 발을 들이기도 한다. 그저 과거의 교훈 덕에 재빠르게 발을 뺄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뿐이다.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나는 지금 그 신에게 일종의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은 고통이다. 지겹고 힘겹고 다 때려치우고 싶어도, 그럼에도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나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다만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를 따지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다시 후퇴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잘 버티고 있다고 믿는 이유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 중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몰입하여 감정 이입이 너무 많이 되거나, 작품이 끝난 후에도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청난 열정과 몰입으로 연기가 연기 같지 않게 보이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는 배우들이다. 반면, 개인의 삶에서는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악역을 맡았던 배우들이 작품 후에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거나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나'와 '현상, 주변, 대상 등'을 분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나와 주변을 잘 분리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폐업은 나의 경제적 생활에 영향을 미쳤을지언정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주체성에는 큰 흠을 내지 못했다. 회사는 망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부단히 찾아보고 있으며 꾸준히 노력하고 준비한다면 백 번의 시도 중 단 한 번의 기회라 할지라도 희망을 걸어볼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다. 스스로를 도울 자세가 되어만 있다면.


회사는 내가 아니다. 나도 회사가 아니다. 회사와 나는 상호 이해관계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로가 필요해서 만났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하다가 어떠한 이유로 관계가 종료된 것뿐이다. 그러니 회사가 망했다고, 해고를 당했다고, 계약기간이 종료됐다고 해서 내 인생이 망했다고 단정 짓지 말자. 새로운 막이 열린다는 시그널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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