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여유로운 금요일의 브루클린
정신없던 1일 차가 지나가고,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어제 저녁을 건너뛰어서인지 오전 7시부터 배가 고팠던 나는 구글맵 서치 신공으로 호텔 옆 블록에 아주 핫한 베이글 집을 찾아냈다.
Liberty Bagel은 요즘 떠오르는 뉴욕의 베이글 맛집이다. 갓 구운 베이글과 인심 좋게 쌓여있는 크림치즈는 완벽한 어뭬리칸 스타일! 다 맛있을 것 같아 고민 고민하다가 에그 샌드위치로 결정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까지 사들고 호텔로 컴백했다.
다소 불량스러운 컬러의 리버티 베이글은 고소 쫀득 그 자체 (소금 결정이 박힌 에브리띵 베이글만 아니면 웬만한 건 다 맛있는 듯) 허브&아보카도 크림치즈와 스크램블 에그 조합은 필승이었다. 이 맛있음을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싶어 급 한국으로 페이스톡을 걸고, 통화를 하며 제법 뉴요커 다운 아침을 시작한다.
날씨가 너무 좋아 즉흥적으로 결정한 오늘의 목적지는 브루클린이다. 지하철을 타고 넘어가도 되지만 굳이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가게 된 이유는 2019년의 추억 때문이다. 당시엔 브루클린에서 시작해 브릿지를 건넜는데 오면서 보니 대부분 반대편 방향에서 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들과 같이 월스트리트에서 출발해서 브루클린까지 넘어가는 일정이다.
그러고 보니 월스트리트 황소동상 만지면 돈 번다면서..!! 효험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이 열일해서 나의 미국 주식들이 우상향 할 수 있도록 힘내주길 바라며 빌딩 숲을 지나간다.
언제 봐도 멋있는 브루클린 브릿지. 하늘까지 예쁘니 더욱 기분이 좋다. 사실 하늘은 청명한데 온도는 다소 쌀쌀하고 다리 위에는 찬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손이 매우 시렸지만 풍경이 아름다워 디카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절반쯤 걷다가 뒤돌아본 맨해튼 다운타운의 풍경. 원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하늘이 비친 모습은 친한 후배가 사진을 보자마자 미쳤다며 엄지 척할 정도로 장관이었다. 역시 앞으로 전진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여유가 있어야 이런 풍경도 볼 수 있는 것이겠지.
맨해튼보다 낮은 건물과 약간은 더 여유로운 분위기가 브루클린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브루클린 포토 스팟 1번지, 덤보는 더 번화했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관광객이 적었다. 그래서 더 사진 찍기 좋았으나 문제는 내가 혼행객이라는 것.
아무래도 외국에서 삼각대 놓고 찍기에는 도둑맞을 우려가 있어서, 아쉬운 대로 셀카를 찍고 있는데 한 외국인 언니가 나에게 사진을 부탁해왔다. 한국인의 피가 발동한 나는 무릎을 꿇고 구도를 잡아 인생 샷을 선물했다. 사진을 확인하더니 너무 고맙다고 본인도 똑같은 구도로 찍어주었다. 혼행객에게는 너무 소중한 사진 품앗이. 덕분에 2019년에 이은 2021년 덤보에서의 내 모습을 남길 수 있었다. Thank you so much!
이어서 점심을 먹으려고 보니 덤보 주변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덤보에서 윌리엄스버그까지 갈 수 있는 대중교통은 버스뿐이다. 그치만 전에 브루클린에서 버스를 탔을 때, 동양인인 나를 세상 신기하게 쳐다봤던 불편한 기억이 있어 리프트를 타고 윌리엄스버그로 넘어가기로 했다.
왠지 오늘의 무드는 '브런치'.
역시 구글맵에서 찾아낸 핫한 브런치 식당 SUNDAY IN BROOKLYN은 만석이었지만, 나같은 혼행객을 위한 바 테이블 좌석은 남아있었다. 럭키!!
금요일이었지만 가게 이름 그대로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의 브루클린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진다. 뭘 먹으면 좋을까? 고민 끝에 담당 서버 언니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그녀의 페이보릿이며 쏘 딜리셔스라는 치킨 버거는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내쉬빌 핫치킨 버거 스타일로 적당히 맛있었다. 이 식당의 분위기를 더 만끽하고 싶어 Honeybear in Holiday라는 너무나 귀여운 곰돌이 칵테일을 추가로 주문했다.
정제돼있지 않은 개성 가득한 브루클린 거리는 뭔지 모르게 멋스럽다.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인 빌딩, 컬러풀한 그라피티, 뭐니 뭐니 해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애플스토어였다. (사실 내가 애플빠이기는 하지만) 붉은 벽돌의 건물에 너무나 쏘 시크하게 사과 로고 모양으로 뚤린 간판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이 배경이 되고, 반대쪽에서 보면 벽돌이 배경이 되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먼 길을 달려 H양이 맨해튼에 도착했다. 타지에서 만나서 더욱 반가운 친구의 소망대로 보스턴에는 없다는 소곱창을 먹으러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코시국이라 뉴욕 카페나 식당들도 대부분 일찍문을 닫던데 한인타운은 밤새도록 밝은 리얼 한국 번화가 같았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물부터 세팅해주는 더욱 한국같은 분위기 속에서 다소 짰지만 귀한 소곱창과 볶음밥 마무리로 둘째 날 하루는 마무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