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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Mar 19. 2023

퇴사를 앞둔 나를 위한 사치

날 위한 시간이 필요한 나에게

회사를 퇴사하기까지 9개월간의 고민과 방황을 했다. 퇴사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창업에 있어서는 얼마나 확신에 차있는지 수십만번 내 자신에게 되물었다.

평소답지 않게 비지니스를 끊어 일단 유럽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엔나를 다녀왔다. 마음이 싱숭생숭할땐 금융치료가 짱이다. 늘 이코노미 중에서도 lcc만타고 7-8시간 출장을 다녔던 나에게 주는 셀프 선물이기도 했다.

4년을 꼬박 밤샘과 내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일 해온 회사를 퇴사하는 날 그 마음을 잊지 못한다. 특유의 적적함, 주변의 축하와 응원 속 무엇과도 채워지지않는 헛헛함이 공존한다. 머릿속과 마음 모두가 멍하게 쿵쾅거렸다. 기분이 서운하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한데 꽤 우울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항상 가까운 친구가 오래 다닌 회사를 퇴사하는 날엔 내가 휴가나 반차를 내서라도 꼭 픽업해서 그날만큼은 옆에서 괜히 쓸데없는 소리로 농담을 나누고 맛있는 걸 사주려한다. 그동안 잘살아왔다고 그 적적한 마음을 채워주려고 한다. 나 역시도 시간과 마음을 내는게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서 애둘러 회사 구경 시켜 달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남의 회사 구경은 이미 한국에서 좋다는 외국계, 한국계 사무실 얼추 다 가봐서 궁금한게 없지만 그게 내 바운더리에 있는 사람을 챙기는 루틴이기도 하다. 힘들때, 좋을때 한결같이 옆에 있어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정의다.

비지니스 타고 일단 유럽에 가면 몸이 편하니까 비행기 타러 갈때부터 기분이 좋다. 그래서 이날도 항상 레깅스차림의 공항패션에서 벗어나 청바지에 구두 신고 갈수 있었다.

하지만 한달에 한번씩 2년을 늘 출장과 휴가를 꼬박 다녔기에 비행기는 비지니스나 이코노미나 내겐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특유의 기내의 답답함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유독 좋아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거의 안되니 세상으로 부터 차단되어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평소에 잘 못봤던 드라마들도 잔뜩 볼 수 있다. 그리고 잘 떠오르지 않던 삶의 영감들이 주위의 압박으로 부터 벗어나 마구 샘솟는다. 정말 어떤 위치로서의 내가 아니라 온전히 나란 사람 자체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때문이다.

비엔나는 차갑다. 도도한데 또 있을 건 다 있다. 문화와 예술이 흘러 넘친다. 사람들의 넘버원 최애도시는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서 적당한 여유와 한결같은 예술적 풍요로움이 나를 유럽권 국가중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또 찾았다.

오랜 비행에도 비지니스라 몸이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다. 일단 짐을 풀고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샐러드를 샀다. 벨베데레 궁전은 내가 비엔나에 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이 도시가 주는 바이브도 너무 좋지만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황홀경에 빠져들곤 한다. 나는 퇴사로 복잡해진 내 뇌와 갈팡질팡하는 내 심장을 가라앉히고 온전히 그 시간만은 행복에 겨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퇴사를 하고 이제 5년차 사업가가 되었다.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인간에 신물이 나고, 아니 질투와 뻔뻔함, 혹은 인간이 가진 본성에 대해 의심하는 계기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사업을 거창하다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주워진 일 진심으로 열심히 하다보니 사업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책임감을 지닌 일인지 모르고 달려왔다. 코로나라는 운도 좋았고 시기도 어쩌다보니 좋아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감사하게도 늘 즐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다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 '사업할래?' 하면 한치의 고민도 없이 안하고 한 회사의 슈퍼스타로 남아 책임은 덜지고, 그 안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살 것 같다.) 너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와서인지 남들이 당연시하는 취미활동 하나 없고, 늘 회사 집 운동이 전부에 번아웃이 여러번 왔지만 더 많은 일로 나를 몰아치고 극복해냈다. 그랬더니 이젠 내 몸이 말썽이다. 그래서 느꼈다. 다시 백투베이직으로 돌아가 이때처럼 내가 온전히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나를 아껴주고 격려해줘야한다고. 나를 다독이는 법을 알고 있는 나이지만 애써 바쁘고 지금 당장에 놓여진 더 큰 일들을 해야한다는 압박에 정신승리해왔다. 이젠 좀 더 큰 관점에서 내 삶과 회사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한다.


 나는 무엇을 할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어딜 가서 뭘 할때 이유없이 설레고 기분이 좋았던 사람이다. 이젠

아까워하지 않고 온전히 좀 더 나은 나를 위해 사는 연습과 노력들을 하고 있다. 글을 더 열심히 쓰기 위해 컴퓨터도 새로 장만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가치들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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