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상> 협상가가 뜨거워서 문제인가?
*협상, 네고시에이터, 존큐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기간의 추석 연휴 동안 안시성, 협상, 명당, 원더풀고스트가 개봉했다. 배우들은 짱짱하다. 안시성은 조인성, 협상은 현빈과 손예진, 명당은 조승우와 지성이라는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다. 다만 감독 파워는 배우 파워보다 한참 모자라고 그 결과는 안시성이 겨우 400만 명 정도고 협상과 명당은 약 150만 명을 살짝 넘긴 기록을 세웠다.
나는 안시성은 조인성의 목소리 톤과 안 맞는 사극으로 패스, 명당은 "가장 명당은 출입구 앞"이라는 댓글을 보고 패스하고 평소 손예진을 좋아해 협상을 보았다. 결론은 협상은 완성도가 낮지만 지루하지는 않은 전형적 JK필름 영화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예진이 협상가치곤 너무 뜨거워서 문제라고 하던데 과연 그것이 문제일까?
대표적 인질협상영화로는 사무엘 L.잭슨과 케빈스페이시가 열연한 <네고시에이터>, 덴젤워싱턴이 주연한 <존큐>, 러셀크로우와 멕라이언이 나온 <프루프오브라이프> 정도가 있다. 협상가 손예진은 그들과 비교해 어떨까? (이 중 영화적 재미와 완성도는 네고시에이터가 단연 일등이다)
협상가는 차갑지만 동시에 뜨거워야 한다
손예진은 협상가치곤 뜨겁다. 인질을 두고 협박하는 현빈의 제스처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직속상사인 이문식의 죽음에는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와 욕으로 대응한다. 이를 두고 협상가가 저렇게 뜨거워도 되나 의문을 제기한다. 협상가가 뜨거우면 안 될까? 일례로 협상에 나온 국정원 직원들은 차갑다. 그러나 그들이 유능한가?
<네고시에이터>의 케빈 스페이시는 매우 유능한 협상가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인질법의 동기에 동조하고 그를 돕는다. 케빈스페이시 역시 뜨거운 심장을 소유한 협상가이다. <존큐>와 협상을 하는 경찰부서장 로버트 듀발은 상대적으로 냉철한 편이긴 하나 그 역시 존큐의 처지를 동정하며 주도권을 강경파인 경철서장에게 빼앗긴다. 인질협상가는 거래를 하는 사람이고 거래의 대상은 사람의 목숨이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를 하는 사람이 냉정하기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옳을까? 는 퀘스천마크가 달리는 문제이다. 실제로 이종석 감독도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협상가의 뜨거운 측면을 부각했다고 밝혔다.
영화 협상에는 협상이 없다
영화는 "협상"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고 주요 갈등구조는 인질범과 협상가 간의 치열한 두뇌게임이다. 그런데 협상 관련 전문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고 심리학적, 범죄학적 접근도 없다. 이것이 "협상이 아니라 구걸"이라는 평이 나온 이유다. 영화 협상의 협상은 누가 이길지에 대한 쫄깃함이 동대문 시장에서 가격협상을 하는 것보다도 없다.
반면, <네고시에이터>에서는 기본적인 인질범 협상규칙에서부터 거짓말을 했을 때의 눈동자 위치 등 다양한 요소로 협상이라는 분야에 대한 매력을 자극시킨다. 그리고 사무엘 L.잭슨과 케빈스페이시 간에 소위 밀당이 상당하다. <존큐>는 사실 인질협상 영화라기보다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성격이 강하고 협상가가 일선에서 너무 빨리 물러났다. <프루프 오브 라이프>는 중간 이후부터는 로맨스로 장르가 바뀌었다.
손예진이 뜨거운 게 문제가 아니라 무능한 게 문제다
<인랑>의 김지운 감독에게도 지적된 문제지만 영화 협상에서 손예진에 대한 캐릭터 빌드업이 잘못되었다. 손예진의 영화 내 첫 협상은 한 주택의 인질극이고 이는 실패로 끝난다. 감독은 이를 손예진이라는 협상가의 캐릭터 빌드업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향후 스토리 전개의 복선을 위한 장치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K필름의 전통적인 클리세와 신파 범벅의 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네고시에이터>의 사무엘 L.잭슨은 협상가로서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를 영화 초반 인질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보여주고 케빈 스페이시 역시 초반에 서부 영화 관련 대화에서 그의 유능함을 증명한다.
즉, 처음부터 손예진은 무능한 협상가로 빌드업되었다. 현빈과의 협상과정에서도 한 번도 리드를 빼앗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전화를 끊는 과정에서 한번 리드를 빼앗을 뻔하지만 그 역시 이미 네고시에이터에서 선보였던 기술이다). 협상 이후 인질 장소의 비밀을 밝혀낸 과정에서 보면 손예진은 유능한 협상가보다는 단지 유능한 형사이다.
<협상>은 협상 영화지만 협상이 없다. 손예진은 현빈을 설득하는데 실패했고 이종석 감독은 관객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안타깝지만 협상을 보느니 정확히 20년 전 작품인 네고시에이터를 봐라.
- 2018년 9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