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문화예술정보시스템(ACKIS, 아키스) 서포터즈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전국 각지의 축제를 둘러보면, 대개 그 지역의 명물을 주제로 구성된 축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지역의 이름 있는 명소나, 그 지역에서 대표적으로 생산되는 수확물, 또는 그 지역이 품고 있는 역사가 축제의 메인 테마가 됩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역사가 된 그 지역의 산물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에 걸맞게 현대의 새로운 문화로 계승됩니다. 이번에 제가 소개해 드릴 기억과 역사를 갖춘 지역의 명물과 축제는, 과거 삼한 시대부터 영남권의 철 문화를 확산하는 역할을 했던 달천철장과 쇠부리문화입니다. 울산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달천철장은 오늘날 ‘울산쇠부리축제’라는 이름의 지역 축제가 열리는 장으로 탈바꿈해, 20년 넘게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2000년의 세월을 간직한 달천철장과 쇠부리문화가 어떻게 지역 문화로 현대화됐는지, 관계자와 만나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로 21회째를 맞이한 울산쇠부리축제의 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축제의 전반적인 기획‧운영‧평가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울산쇠부리라는 문화적 자원을 계승할 수 있는 전담 연구기관이나 문화기관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 내 울산쇠부리문화를 탐색하고 역사를 보존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고향이 울산 북구입니다. 사무국장은 2011년 12월부터 맡기 시작했는데, 이곳이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사무국장을 맡기 전까지는 지역의 쇠부리문화나 달천철장, 광부님들이 이곳에서 일을 하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축제 사무국장 직을 수행하면서 그 뿌리가 되는 울산쇠부리문화를 알아갔고, 알면 알수록 놀라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일찍이 알지 못했다는 부끄러움도 자리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쇠부리축제에 몸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개인적으로는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침 축제와 연극은 같은 결인 듯하면서도 다른 문화예술이라고 보는데요. 한 편의 연극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관객과 만나면서 무대 공연이 완성되는데, 그런 것처럼 쇠부리축제도 쇠부리문화라는 소재로 시민‧대중들과 어떻게 잘 만날 수 있도록 하는가가 마치 연극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Q. 달천철장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전제되어야 할 사실은 제가 역사학자나 고고학자가 아니어서, 제가 인식하는 부분에서의 역사‧고고학적인 내용은 부족함이 있을 듯합니다. 다만 제가 설명할 수 있는 쇠부리문화의 역사에 대해 말씀드리면, 저는 울산쇠부리문화를 설명할 때 첫 번째로 울산박물관에 가보셨냐고 여쭤봅니다. 지역의 문화자산‧역사들을 총체적으로 담은 그릇이 박물관이라면, 박물관 입구에 커다란 철로 된 창이 보입니다. 그게 바로 달천철장을 의미합니다.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담아내는 문화자산을 소개하고 있다는 거죠. 울산이 산업도시라는 정체성은 2000년 동안 철을 끊임없이 생산한 달천철장과, 그 철을 가지고 형성된 철기 문화로 상징적으로 구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쇠부리라는 단어는 좀 어렵습니다. 울산 시민도 농담조로 ‘새의 부리’라고 하시는데, ‘쇠를 부린다’라는 순우리말입니다. 고대부터 이어온 철 문화인, 철을 채집하고 녹여서 철기를 만드는 전 과정을 쇠부리라고 지칭합니다. 그렇다면 울산쇠부리는 무엇인가? 그 중심에는 달천철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일한 철 생산지이고, 기원전 2세기부터 철을 생산해서 폐광된 게 2002년이니까요. 철 생산을 종료한 건 1970년대입니다.
조선 중기 때는 저희가 조선의 철광왕이라 부르는 구충당 이의립 선생이 발명하신 쇠를 녹이는 제련법이 존재했습니다. 쇠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라, 그 작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노동의 고됨을 달래고 호흡을 맞추기 위해 노동요를 불렀죠. 그게 울산쇠부리소리라는 노동요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근현대는 포항이 제철 도시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곳 달천철장이 대한철광광업소라는 국영기업으로 명명돼서 제철의 중심적인 산업 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철이 포스코로 가서 제련돼 울산의 중공업단지를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역사가 이곳이 한반도 철기 문화의 중심지이자 원류지를 보여줍니다. 달천철장은 철기 문화를 2000년간 끊임없이 배태시킨, 한반도 철기 문화의 자궁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쇠부리문화‧축제를 통해 선보이고 있는 지역적‧인적 가치
달천철장에서 삼한 시대부터 시작된 철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고요. 이의립 선생이 임오군란, 병자호란 양란을 겪으며 초토화된 이 땅에 철을 채집‧제련해서 국가에 공납하는 역할도 있고, 일제강점기 때는 수탈당한 공간이기도 했고, 근현대에서는 폐허가 된 이곳에서 산업화를 일으키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그걸 계승하고 현대화하는데 축제나 다양한 예술적 행위들이 활용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김수용 작가는 쇠부리 작업 과정과 일제강점기 이 땅의 철을 지키려던 민초들의 삶을 그린 ‘불매’라는 소설로 표현하셨습니다. 이 소설은 악극 및 마당극, 연극 등으로 2차 창작이 활발히 이루어졌고요. 또 지역의 주민들은 모여서 쇠부리소리를 전승‧보존하는 역할도 하고 있고, 이 쇠부리 소리를 현대 아티스트들이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퓨전 국악의 형식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축제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건, 옛것을 어떻게 동시대의 사람들과 나눌 것인가. 그리고 동시대의 문화적 수용성이 분명 존재할 텐데, 그분들이 흘러간 옛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지금도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축제는 자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선 제게 주어진 의무는 원천 콘텐츠의 탐색과 제대로 된 구현입니다. 쇠부리소리의 경우도 인문학적인 접근으로 학술대회를 열거나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소리의 근원을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에 대한 부분. 또 쇠부리소리가 아까 말씀드렸듯 쇠를 뽑아내는 작업으로 시작했는데, 1920년대까지는 쇠부리 조업들이 이루어지다가 근현대적인 제철 기술이 도래하며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당시 종사하셨던 분들이 흩어지거나 돌아가시며 기술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고, 쇳물을 뽑아내는 기술을 복원하는 게 우선 해야 할 일인 것 같아 2016년부터 쇠부리 기술을 지역 주민‧학자‧장인들과 함께 톺아보는 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울산이 병영 도시였어요. 많은 병장기가 필요했죠. 아마 이곳에서 제련된 철기들이 병장기를 만드는 원료가 됐을 겁니다. 병영 인근에는 수많은 대장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장인도 안 계시고 흔적을 찾을 수도 없어서 지역 주민이 대장간 기술도 직접 구현해내고 있습니다.
또 2002년에 폐광된 달천철장 광부들의 삶. 철장에는 315m의 갱도가 있었습니다. 근방이 대부분 광산 터였는데, 폐광되면서 갱도가 묻히고 아파트 주거 시설이 새롭게 들어섰습니다. 이제 광산의 흔적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제 온몸으로 광산 수백m의 갱도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 체득한 몸으로 증명하고 계신 광부들을 인터뷰하는 게 역사의 보존이 됐습니다. 그들을 축제에 모시면서 ‘당신들이 있었기에 축제가 시작됐다’는 세레머니를 갖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연락도 취하며 인터뷰해서 영상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축제는 3일이지만 나머지 362일은 또 뭘 할까 고민했습니다. 쇠부리라는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지역 문화활동가들과 함께 쇠부리를 모티브로 한 생활문화 활동을 만들어보자 생각했습니다. 달천문화광산이 대표적인 예로, 달천철장에서 2000년간 쇠를 캤다면, 오늘날에는 문화를 캐내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의미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문화광부가 되어서 지역 특색이 담긴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의 달천문화광산이라는 사업도 2020년부터 진행 중입니다.
되돌아보면 이 문화를 발굴하고 탐색하고 재생산해서 오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중요한 건 인적 자원인 것 같아요. 과거에 이의립 선생님이나 쇠부리 작업을 했던 불매꾼들, 지하 수백m에서 철을 캔 광부님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쇠부리문화를 만드는 정신을 계승해서 지역 주민들이 때로는 불매꾼, 때로는 장인, 때로는 대장장이가 됩니다. 호미‧낫‧칼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시민과 함께 문화를 나누는 예술가도 되고, 문화창출자가 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간에 쇠부리축제사무국이나 제가 매개자로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은 디딤돌 역할을 하며 소명 의식을 다합니다. 제가 언젠가 사무국장을 그만두면, 보존회에서 소리꾼이나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되든, 쇠부리를 모티브로 연극을 만드는 창작자가 되든, 어떤 역할을 계속 수행하지 않을까 상상하고 있습니다.
Q. 현대 시민들에게 역사나 과거 문화의 가치 재창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게 항상 고민입니다.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쇠부리문화를 우리의 고유한, 없어져서도 안 되고 기억해야 할 문화자원으로 인식시킬 것인가가 가장 근원적인 책무라고 생각되는데요.
사실 구체적인 축제나 예술활동‧생활문화 등 통해 보여주는 것 이전에, 우리에게 쇠부리문화는 철 이상의 소재들‧첨단 산업들이 매일 새롭게 쏟아지는 현 시대에서 이제 수용되지 않는 옛것이라고 인식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것을 수용하고 가치를 가슴에 담고 가야 한다고 설득기 위해선, 첫째로 왜 우리가 이걸 가꾸고 가치를 이어가야 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로컬에서 타 지역과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로 인식되게끔, 그리고 그게 오늘을 사는 데 다른 지역 시민들과 다르게 독특한 인문적 자산이 있다는 것, 힘들거나 기쁠 때 우리에겐 쇠부리 정신이 있다는 정신문화로 지역의 고유한 정신문화로 인식될 수 있게끔 하는 게 우선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고요.
두 번째는 정신문화와 더불어 원천 콘텐츠인 쇠부리 기술‧소리‧대장간 등 달천철장에 대한 교육 사업들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그걸 동시대의 문화적 트렌드로 재해석하는, 소위 말하는 힙하게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매체나 플랫폼을 활용해서 재해석하는 노력이 같이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쇠부리문화를 총제적인 울산을 상징하는 문화로서 계속 소통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플랫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연구기관이든 문화재단의 형태든 거점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속적으로 관을 설득하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흩어져 있고 개별화된 자산을 축적해,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인적‧공간적 자원이 지역에서 너무도 부족한 게 사실이고요. 이 자원들을 한 곳에 모아내 분류‧분석해 새로운 문화트렌드로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문화트렌드를 만들어내고 그게 지역에 발현하는 건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속적인 문화자산의 탐색과 투자가 축적과 기다림의 시간으로 용인된다면 충분히 지역의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천철장에 축적된 2000년의 시간 안에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시간은 지역 공동체 문화를 만드는 데도 중요합니다. 일본의 마츠리라 칭하는, 1년에 한 번씩 대규모로 시민들이 하는 세레머니는 지역 주민 간의 연대감을 만들어내기 위한 매개체이자 구심점의 역할을 합니다. 달천철장에서의 쇠부리문화가 그런 매개체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구심점으로의 역할을 만들어낼 것인가는 여전히 지역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숙제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그것을 찾다 보면 자연스레 쇠부리문화가 옛것이 아닌 현대화된 우리의 독특한 생활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Q. 끝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는 연극배우다 보니 대본이라는 텍스트를 볼 때 작가에 의해서 쓰여진, 그리고 캐릭터가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과 단어‧언어를 활용해서 캐릭터의 정서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쇠부리문화를 매개로 하는 울산쇠부리축제를 기획함에 있어서 쇠부리문화는 무엇인지, 오늘 우리는 쇠부리문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매년 질문을 던지게 되거든요.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나오면 시민들과 어떻게 이 문화를 나눠야 할지 방법론을 이야기합니다.
그 방법들을 기획할 때마다 생각하는 건, 쇠부리라는 원천 콘텐츠의 명확한 궤, 적어도 버리다 버리다 절대 버려서는 안될 핵심적이고 근원적인 알맹이들은 계속 번역‧재해석하며 항상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원을 버려버리면 전혀 다른 재해석이 이루어질수도 있고, 하는 것이 전혀 다른 게 되어버리고, 우리가 얘기하려고 했던 것이 거꾸로 되기도 하거든요. 근원‧출발지에 대한 얘기들은 절대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지역에도 문화자산이 많을텐데, 그 지역의 문화들이 뿌리내리게 된 근원적 이유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울산쇠부리축제도 축제의 근원인 쇠부리문화를 절대 버리지 않고, 그 근본에 대해서는 늘 존중과 경애로 표현하면서 그것을 오늘의 시민들과 계속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로 꾸며보고자 합니다.
고루하고 현대적 의미에서 힙한 부분이 부족하더라도 2000년 동안 지역의 문화를 지탱해 온 철 문화 축제이니만큼, 매년 축제가 열릴 때 많이 찾아오셔서 산업도시 울산이 이곳에서 출발했다는 걸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알아주고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즐거움의 뒤에는 전통 철 문화와 철 문화를 지켰던 사람들에 대해 가슴 한편에 기억하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연구보고서 ‘전통적 정신문화의 현대화 방안’에 따르면, 전통 정신문화의 발굴은 기계적 재현이 아닌, 시대에 맞게 취사선택하고 나아가 각색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전통 정신문화의 활용은 매우 신중해야 할 부분이라고 합니다. 전통은 늘 재해석에 노출된 가변적 자원으로, 자원의 재해석을 신중하고 발전적으로 수행하는 건 모든 이해관계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전통 정신문화의 자원은 △효 △가족주의 △예(禮)와 염치 △공의(公義) △공동체주의 △청빈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전통 정신문화를 현대화하기 위한 목적과 방향의 명확한 설계가 지역의 기억과 역사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낼 기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