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줍은아이 Aug 04. 2015

포스트잇




몇 년 전 선물 받았던 시집을 다시 꺼내 들었다. 나는 괜찮았던 책에는 맨 앞장에 별표를 그려 넣는 습관이 있다. 이 책에는 까만 별이 두 개나 그려져 있었다. 꽤 마음에 들었던 건지 까만 별이 두 개라니.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시집의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다. 팔락거리며 책의 페이지를 넘겼더니 사이에 끼워져 있던 포스트잇이 떨어졌다. 종이를 주워들자 익숙한 글씨다.  



-잊지 말기  


급하게 휘갈긴 내 글씨. 중요한 내용이었는지 밑줄에 별까지 있다. 마지막으로 펼쳤던 페이지가 어디였더라, 손에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마지막 페이지에서 손을 치워버린 지 오래다. 언제 썼는지, 어떤 이유로 썼던 건지, 이 책과 관련이 있는지조차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잊지 않기 위해 쓴 메모인데. 책에 다른 포스트잇이 더 있나 페이지를 넘겨본다. 분홍색 포스트잇에는 잊어버리기, 라는 글이 적혀있다. 책 한 권 안에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적어놓고, 잊기 위해 글을 적어놓다니. 잊어버리기, 잊지 말기 외에는 어떠한 글도 없는 걸 보면 그때의 기억에 대한 자만심이 꽤 강했나 보다. 어떤 식으로 잊어버리더라도 이 포스트잇을 보는 순간 너는 기억하게 될 거야, 라는.  



기억이라는 게 단편적이고 편파적이기에 나는 메모라는 습관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모든 시간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이 습관이 기억의 모든 것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아니, 단편도 가져오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오랜만에 꺼낸 너의 첫 선물부터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왜 나는 이러한 메모를 남겨두었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지.  



아, 저번에 네가 그렇게 말했던 적도 있다. 왜 잊는 걸 두려워하느냐고. 나는 그런 너에게 기억이라는 최고의 추억을 왜 잃어버리느냐고 반문했었다. 너는 나에게 희미하게 웃으며 그랬었지. 관계가 틀어지면 추억도 잊고 싶은 모든 기억이 될 거라고.  



아, 나는 그제야 포스트잇의 의미를 깨닫는다. 나는 기억함과 동시에 망각하고 싶어 했던 틀어진 관계를 생각해내고야 만다.



minolta x-700/fuji color superia 200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