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영화의 한계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젠가 바나나가 멸종위기라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안 사실인데 바나나는 오직 하나의 유전형질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충해나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죠. 수많은 자연 바나나종은 이미 사라졌고 인간이 만든 자가복제 바나나만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영화 "범죄도시 3"을 보면서 시리즈 영화의 한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가 복제로 유전적 한계에 봉착한 바나나처럼요.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가 현재 대한민국 영화의 희망으로 우뚝 서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관람을 하지 않는 시대에 천만관객을 또다시 동원하며 영원히 식지 않을 태양처럼 보입니다. 얼핏 듣기로는 시리즈 5편까지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하더군요. 4편은 이미 개봉이 예정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양한 유전자가 없어 언제나 멸종의 위협에 노출된 바나나와 같은 위태로움이 보입니다.
영화 "범죄도시"의 전설은 단연 1편에서 시작되었죠. 1편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유를 다시 상기해 보겠습니다. "마동석"이란 배우의 어마어마한 캐릭터성과 카리스마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범죄도시 1편은 정말 악당다운 악당이 나옵니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마동석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잘하면 마동석을 이길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 정도였죠. 주변인물들의 역할도 좋았습니다. 각각의 캐릭터가 가치가 있었습니다. 마동석 원탑의 영화 같아 보이지만 조연들이 없었다면 영화는 성립하지 못했을 겁니다. 2편에서도 그 흐름은 비교적 잘 이어졌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3편은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 "범죄도시 3"은 출연진이 리셋이 된 채로 시작됩니다. 3편은 마동석 원탑을 넘어서서 슈퍼히어로가 되어 혼자 다~ 합니다. 동료들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언제나 같이 다니는 파트너는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스토리는 따라갈 필요 없이 그저 마동석의 액션만 보면 됩니다. 아재 개그 같은 유머는 양이 많아졌지만 전 시리즈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겠네요.
영화 "범죄도시 3"은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프랜차이즈화에 따른 효율성 증대 때문일 겁니다. 제작비는 모자라는데 시리즈를 거듭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마동석", 그리고 액션과 유머를 선택한 것이죠. 3편은 실질적인 프랜차이즈 1편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리셋한 범죄도시 리부트가 된 것입니다.
프랜차이즈 영화들의 문제는 바나나와 같이 자가복제에 따른 치명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대부"도 3부에서 아쉬움을 남겼고, 현재 상영되고 있는 (2023.07)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5편도 평이 좋지 못합니다. "범죄도시 3"은 이미 자가복제에 의한 유전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동료 경찰들을 모두 갈아치우며 스스로 유전자를 파괴했습니다.. 마동석보다 더 빛났던 전편의 반장님(최귀하 배우)은 어디 가셨나요?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는 아직까지 흥행에서는 크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바나나가 멸종하는 이유는 수요가 없어져서가 아닙니다. 바나나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죠. 과연 4편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집니다. 영화 "범죄도시"는 대한민국 최고 프랜차이즈 시리즈 영화가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