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조절 장애와 마주하다
지난 글 ("지랄 총량의 법칙")에서는 저의 과거인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내 분노의 근원을 알기 위해 노력했었습니다. 이제 현재를 마주할 차례입니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지? 그리고 왜 나는 그것에 화가 나는 것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교통법규에 대해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통법규야말로 가장 간단하고 위반 시 변명하기 어려운 법규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류의 불법의 경우, 지난한 재판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빨간불에 건너지 말라는 규칙은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죠. 그래서 빨간불에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화가 납니다. 이처럼 사소하지만 어기기 어려운 규칙을 깨는 사람들, 누구나 상식적이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가 납니다. (물론 파렴치한이나 극악무도한 흉악범들에게도 화가 나죠.)
교통법규에 강박적이다 보니 아마 저는 남들보다 무단횡단한 경우가 적을 것입니다. 제가 화를 내는 대부분의 경우는 무단횡단처럼 "나는 잘 지키는데 당신은 왜 안 지키는가?"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참기만 하고 복종에 길들여진 사람이 열등감에 빠지면 고작 신호등 빨간불 하나 잘 지키는 것에 엄청난 자아도치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사소한 분쟁에 필요이상으로 화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100% 남이 잘못했다고 판단이 되면 아주 무자비해지죠. 왜 관용이나 포용심은 저에게서 발현되지 않을까요? 상대방에게 부당하게 졌다는 기록이 평생 남아서 모두 저를 얕잡아 볼 것 같은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일까요? 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나 자신이 청렴결백해야 한다는 생각이 대인 관계를 매우 차갑게 만드는 부작용도 발생시킵니다.
화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노가 정당해지는 경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남을 위한 분노일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게 되는 "화"는 대부분 자신을 위한 경우이지요. 그런 화는 거의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한 마디로 화는 무조건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어떻게 하면 저의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