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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문일식 Mar 04. 2022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여행 이야기] 완도 여서도

온전히 전해지는 나를 위한 휴식 섬, 완도 여서도

청산도에서 출발한 섬사랑 7호에서 바라본 여서도 전경

섬 여행은 참 쉽지 않아.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거든. 그래도 요즘 육지에서 섬까지 다리를 놓고 이어서 섬들 여행하기 많이 쉬워졌어. 물론 연안 섬들에 한해서지. 울릉도나 가거도, 백령도 등 적어도 3시간 이상 가야 하는 섬들은 여전히 가기 쉽지 않아. 여기에 또 하나의 섬을 넣는다면 나는 완도의 여서도를 꼽고 싶어.


내가 웬만큼 마음먹지 않으면 가기 힘든 섬이라고 했지? 오늘 만날 여서도는 청산도에서도 한참을 가야 만날 수 있는 섬이야. 웬만큼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두 가지야. 하나는 가는 배편이 만만치 않아. 여서도는 섬사랑 7호가 운행을 하는데, 이 배는 주민 수가 적은 도서 섬을 운항하는 여객선이야. 국가 보조항로라 하는데 운영 수입이 적자라 손실 폭을 국가에서 보전해 주는 항로지. 얼마 전에 소개한 우이도를 들어가는 배편도 국가보조항로로 목포-도초도-우이도를 돌고 돌아. 국가보조항로 중 가장 많은 섬을 도는 진도에서 동•서 거차도를 도는 섬사랑 10호와 13호인데 무려 32곳이나 돼. 그만큼 섬이 많다는 걸 방증하는 셈이지. 

섬사랑 7호와 여서도 마을 전경

국가보조항로는 섬을 거치고 거치는 거라 운행 시간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해. 섬사랑 7호는 완도 여객선 터미널에서 오후 3시에 출발해 소모도, 대모도를 들러 청산도를 거친 뒤 여서도로 들어가. 섬사랑 7호는 이튿날 7시에 여서도를 출발해 청산도와 장도를 거쳐 다시 여서도에 돌아온 뒤 다시 10시에 출발해 청산도, 장도, 대모도, 소모도를 거쳐 완도항으로 들어가지. 그래서 여서도를 여행하려면 무조건 최소 1박 2일의 일정을 잡아야 해.

여서도에서 바라본 청산도... 그 사이로 '골창 깊은 곳'의 바다가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야. 청산도에서 여서도로 가는 뱃길이 좀 험해. 구로시오 해류의 영향으로 물살이 아주 거칠어. 여서도 사람들은 '골창 깊은 곳'이라 부르는데, 물살이 험하다 보니 그나마 완도에서 한 번 운행하는 배편은 결항되기 일쑤야. 물론 배편 운항 여부가 날씨에 많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이 '골창'에 좌우되기도 해. 실제로 여서도 들어갈 때 청산도를 벗어나니까 평온하게 가던 배가 갑자기 출렁거리더라고. 물살이 얼마나 무섭던지. 


여서도는 완도에서 가장 먼 섬이야. 청산도에서 보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지만 뱃길로만 1시간을 달려야 하지. 완도에서 출발하면 3시간이야. 오죽했으면 한국관광공사에서 2018년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섬 33곳을 선정했는데 그중 여서도는 '가기 힘든 섬'이라는 테마로 선정됐을까? 지도를 찾아보면 제주도 위로 추자도, 여서도, 거문도가 거의 나란하게 바다 위에 떠 있어. 그만큼 여서도가 육지에서 먼 섬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셈이지. 오히려 여서도가 육지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제주도에서 출발하는 게 더 가깝다니까. 그래도 갑판에서 바라보는 여서도의 모습은 참 좋았어. 다도해를 벗어나 망망대해 위해 우뚝 솟은 섬의 풍경을 보여 주니까 말이야. 

걸어 다닐 수 있는 여서도의 전부... 

여서도 이름은 원래 ‘서산(瑞山)’이었대. 1007년경 제주도 근해에서 상서롭게 태어난 섬이라는 뜻인데 후에 고려 시대 때 생긴 섬이라 하여 고려의 ‘려(麗)’ 자와 서산의 ‘서(瑞)’자를 합하여 여서도(麗瑞島)라 불렀다고 해. '아름답고 상서로운 기운을 품은 섬'이란 뜻이지. 이 섬에는 1690년대 진주 강 씨가 처음 입도한 이후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한때 여서도는 완도군이 아닌 강진군에 속해 있었다 하더라고.


조선시대 때 처음 사람이 살았던 건 아니야. 사람의 흔적은 7천 년 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패총(조개무지)과 어업 도구들 등이 지난 2005년 발굴됐어. 어쩌면 제주도와 연결된 중간 기착지로 인류가 정착해 살았을 거야. 여서도의 사람 흔적은 고려 시대 이후부터 사라져. 바로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 때문인데, 이후로 17세기 조선 시대에 들어서야 다시 사람이 들어가 살게 된 거지.

여서도의 돌담

그렇게 섬의 전경을 보며 도착한 여서도는 정말 한적하면서도 적막했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고 할까? 그러곤 이내 답답함이 느껴졌지. 여호산 아래로 여서도 항과 가까운 마을이 여서도 섬의 전부였어. 우선 마을을 한 번 돌아볼까? 마을은 여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경을 품고 있어. 여호산 산자락으로  들어선 마을과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 그런데 돌담이 참 독특하고 아름다워.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이라 바람이 많아. 집도 보호해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 경작한 농작물도 보호해야 했지. 그래서 집을 둘러서 담을 쌓고, 일궈 놓은 밭에도 담을 쌓았지. 마을 정상 부근에는 폐교된 분교도 하나 있어. 제법 운치 있지. 여서도의 진산인 여호산은  겨울철에만 올라가라고 하더라고. 산에 뱀이 많대.

방파제 낚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여서도는 낚시의 섬이야. 여서도를 여행하는 사람보다 낚시꾼들이 훨씬 많이 찾는 섬이지. 주로 배를 타고 섬 뒤로 넘어가 낚시를 하지만 방파제에서도 낚시를 할 수 있어. 여서도에 갔을 때  해 질 무렵 낚시를 했는데 돌돔을 잡았지 뭐야. 난 낚시를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말이야. 그런데 아직도 기억 남는 건 낚싯대가 방파제의 테트라포드에 걸린 줄 알았는데 그 잊히지 않는 묵직함이 바로 고기가 걸려들던 순간이었다는 거야.

여서도에서 바라본 일몰

여서도는 산에 막혀 청산도 방면으로 한쪽만 뚫려 있는 섬이야. 섬의 반대쪽으로 가려면 배를 타고 나가야 해. 그야말로 온전히 갇힌 섬이야. 할 거라곤 산책과 생각, 낚시밖에 없어. 그런데 이렇게 막히고 적막하고 갇힌 섬이 어떻게 가보고 싶은 섬이 되었을까? 


잘 생각해 봐. 여서도에는 너에게 방해받지 않고 주어진 온전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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