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by 새나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은 단 한 가지. 현재를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무감각 해진 감정들과 초점 없는 눈빛에 자주 흔들렸다. 흔들리는 일상에서 잠시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이라는 말이 맞는 거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상이 무섭게 다가왔다. 요구와 배려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말들이 버거웠다.


까짓것, 배려 좀 해주면 안 되나, 요구 좀 들어주면 안 되나,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사람들은 요구와 배려 앞에서 당연함을 말한다.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으면 비난과 아쉬운 한숨을 보인다.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나의 삶도 녹녹하지 않음에 타인의 삶을 신경 쓰기에는 멘털이 단단하지 않다. 좋은 일은 함께 나누고, 나쁜 일은 모른 척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은 일은 꽁꽁 숨기고, 나쁜 일은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온갖 부정한 일들을 나에게 던져 놓고 자신은 홀가운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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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고 싶은 곳을 찾아 헤매다 선택한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나에게 기대고 싶은 존재다. 신비하고 신기하게도 여행을 떠난 곳에서는 버거운 일상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 집중하는 시간이 여행이다. 그 순간 온전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똑같은 일상이 아닌가라고 사람들이 묻는다. 그렇다. 버거운 일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요구와 배려를 들이민다.


할 수 있는 일은 한다. 요구든, 배려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집어 든다. 나머지는 돌려보낸다. 이건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여행에서 거절을 배웠다. 하지 못하는 것을 끙끙 대며 이고 지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많다. 세상은 넓고 나는 혼자다. 많고 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배려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을 한다.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들 그건 나의 몫이 아니다. 비난을 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 비난을 받을 필요는 없다.


여행은 그런 것들을 내게 말해준다. 뭐 대단한 인생을 살려고 하지 말라고. 가끔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고, 산을 보며 살라고 말한다. 그것마저 힘이 든다면 발밑에 핀 풀들을 보고, 전깃줄에 앉은 새들을 보고, 놀이터에서 나는 아이들 웃는 소리를 들어 보라고 한다. 인생 별거 없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 뭐 그리 화나는 일도, 아쉬운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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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어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겠는가. 안 되는 일 투성이 인생이다. 알면서도 속상한 게 사실이다. 나에게만 인색한 것 같은 행운이 여행에서는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비를 피하려 들어간 식당에서 인생 맛집을 만나기도 하고, 지나가다 들린 옷가게에서 대폭 할인을 하는 행운까지. 행운 투성인 여행을 자주 마주한다. 여행은 늘 행운을 품고 나를 기다려 준다. 그래서 그런 걸까. 버겁고 헐거워진 일상에서 자주 여행을 그리워한다. 그리워하다 끝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일상을 잠시 멈춤 한다. 내가 있는 곳이 나라는 사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나는 가볍다. 무거운 일상을 두고 떠나와서일까. 어디에 있든 나는 나인데. 여행지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여행이 주는 신기하고도 신비로운 힘일까. 일상도 여행처럼 살고 싶은 나이지만, 여러 번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나는 여전히 버겁고 헐거운 일상에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여행 같은 일상은 불가능한 일이지도 모른다. 불가능하기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인지도. 그럴지도.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일상이 여행 같을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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