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30년을 살아 온 한국인이 프랑스에서 일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프랑스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그렇다고 원어민 실력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 6년 차 직장인이 파리에서 일을 하겠다고 왔다. 나조차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상상하지 않았기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언어적 사회적 문화가 이질적인 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이상의 도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성격과 문화 수용성,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의 습득 정도에 따라 도전의 크기와 무게는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그라운드 룰이 다른 사회에서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연출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잦은 돌발 상황들로 인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주저앉고 싶게 했던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오기 전부터 마음 먹었던 것은, '분명 힘들겠지만 배울 점이 있을테니 잘 살펴보자.’ 였다. 그 중에서 꼭 한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면 업무 문화일 것이다.
자율성과 믿음
이 곳에도 직급은 있다. 그러나 연차나 나이, 성별에 따른 직책의 차별은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례로 우리 팀의 경우 직급은 팀장(Manager) 아니면 팀원(Team member)이다. 팀장은 팀의 업무를 함께 수행하면서 한 가지 의무(Mandate)를 하나 더 가지고 있을 뿐이다, 팀원들을 이끌어 가는 리더의 역할. 팀장이기에 방향 제시 및 업무 지시를 하지만 본인도 팀의 업무 중 일부를 담당자로 맡고 있다. 보통 팀장 직급을 달면 자신이 맡던 업무를 팀원에게 위임하는 한국의 보통 사내 문화와는 차별점이 있다. 이 곳에서 오직 순수 의사 결정 및 매니징 역할만 하는 직급은 임원 뿐이다.
그렇다면 팀원들은 업무를 어떻게 배분하여 진행할까? 당연하게도 우선적인 고려 사항은 해당 직원의 전문성(Specialty)이다. 각자의 업무 경력 및 분야가 상이하고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분야가 있기 마련이니, 그들의 강점을 고려하여 업무를 배분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놀라웠던 부분은,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에는 '막내' 라는 개념이 있다. 팀에 가장 최근에 합류한 직원 혹은 연차가 가장 짧거나 나이가 어린 직원을 그리 부른다. 이런 '막내'는 팀의 살림에 필요한 허드렛일을 주로 담당한다. 그리고 업무를 아직 파악하지 못해 코칭을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 분류되며, 이에 따른 유예 기간을 암묵적으로 부여 받는다. 덕분에 '신입사원' 으로 지내는 동안에는 선배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업무를 단계별로 교육 받고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당연히 업무는 연차에 따라 차등을 이루는 구조가 된다.
이 곳에는 이런 '막내'가 없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정직원이 되기 전 인턴 사원만이 막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은 인턴 기간을 거의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기 때문에 졸업하기 전 대부분 미리 직장 생활을 경험해보게 된다. 그 후 정직원이 되었다면, 이제는 팀원들 중 연차가 15년이든, 5년이든, 1년이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일하게 된다. 팀의 결정에 찬성/반대 하거나, 업무 배분, 업무 진행 방향, 방식 등 모든 면에서 본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는 분위기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따르게 된다.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하고 경력 1년도 채 채우지 않은 25살 동료 직원이 혼자 반대 표를 던진다고 해서, 그의 주장을 지위로 짓누를 수 없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의견을 들어보고 설득하거나 결정을 다시 고려해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연차에 상관없이 본인이 메인 담당자로 맡고 있는 업무가 각자 있고, 그 업무를 함께 진행하는 상대 팀 혹은 외부 직원이 대표이사든 임원이든 상관없이 본인이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매니저와 함께 상의하고 미팅에 동석하기도 하나 보통은 담당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업무를 진행한다.
이렇게 업무 배분 및 역할이 다르다 보니, 동일한 연차라 하더라도 5년 차 직원의 역량은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 이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느꼈던 점은 모두가 매니저처럼 일하는 것 같았다. 철저히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더 책임감 있게 업무에 임하며 이러한 팀원들을 믿어준다. 물론 어디에든 무임승차를 하려거나 꾀를 부리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나, 상대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었고 이미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수용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이 곳에서 일하면서 많은 순간 자신에게 질문하곤 했다.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우리도 이런 건 적용해보면 어떨까? 물론 나의 경험은 지극히 이 곳 회사, 이 곳 팀에 의한 경험과 과거 한국에서 근무했던 회사와의 비교일 뿐이지만 나의 작은 경험으로 인해 내가 속한 팀이, 회사가, 그리고 사회가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다면 그 경험을 기꺼이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