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그 후

by 박모카

2살, 6개월 아가를 데리고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만석이고 운행 내내 잠을 못 잤지만 걱정한 만큼 고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집 계약 기간이 끝나가자, 집주인한테 이메일이 왔다. 보증금은 집 확인 후 며칠 내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월하게 일이 마무리 되는 듯 싶었다.


집 계약의 마지막 날은 내가 아닌 우리 아빠가 지켰다. 내가 캐나다에 자리를 잡은 겸, 집 렌트비를 내는 기간이 남은 겸, 겸사겸사 부모님께서 캐나다에 놀러 오셨기 때문이다. 전자레인지, 밥솥처럼 생활에 필요하지만 굳이 사기는 돈아까운 물건은 내 친구가 가지고 가기로 했다. 아빠께서 마지막 날에, 집 밖에 물건을 놔두고 친구가 가지고 가기로 했다. 또, 여기 캐나다는 나갈때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가는 것이 규칙이라고 했다. 아빠는 우리 보증금이 떼일까 싶어서 반짝반짝 윤이나게 평소보다 더 신경써서 마무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하셨다.


아빠께서 귀국행 비행기를 타던 날,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집 앞에 쓰레기가 너무 많은걸? 이거 사람 불러다가 치워달라고 하고 돈은 너희에게 청구해야겠어.' 이게 무슨말인가 싶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부터 있던 쓰레기 사진이 돌아왔다. 아... 또 지저분한 언쟁이 시작되나 싶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캐나다는 왜 깔끔하게 끝나는 것이 없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것들은 원래부터 있던 거라고, 당연히 집주인꺼라고 생각했다고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집 앞에 있는 내가 놔둔 물건들은 친구가 가지고 갈꺼라는 설명도 붙였다. 그러자 생각치 못한 메세지가 돌아왔다.


"옆집에 사는 우리 어머니, 강도 당했어. 경찰에 신고했어. 경찰이 친구 전화번호를 알려달래."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내 친구가 물건을 가지러 집에 갔는데, 옆집에 사는 집주인의 어머니를 마주쳤다. 할머니께서는 영어를 전혀 못하셨다. 처음보는 덩치 큰 친구를 마주치자 겁을 잔뜩 먹으셨다. 친구도 당황해서, 어떤 물건을 가져가야할지 헷갈렸다. 그래서 생각나는 물건인 전자렌지 하나만 가지고 갔다. 일이 벌어진 이후에, 내가 다른 박스가 3개 더 있다고 알려줬다. 친구는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물건을 가지고 왔다.


할머니께서 강도짓을 당했다는 것이, 친구가 가지고 간 물건에 대해 말하는 것인 줄 알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중에는 800만원 상당의 금목걸이도 없어졌다고 하셔서 더 황당했다. 잃어버리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물건을 들고다니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시 친구의 연락처를 요구하는 시점으로 돌아와서, 내 입장에서는 친구의 정보를 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괜히 물건을 가지고 가라고 해서 쓸데없이 경찰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는 어떻게해서든 내가 보호해야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친구의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는 이메일을 작성하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뭔가 찝찝했다. 강도짓을 당했다는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서는 소매치기 당했다는 표현에 rob 당했다고 써서, 누군가 물건을 훔쳐갔다고만 생각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왠지 'rob'당했다는 단어 선택에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물었다.


"집에서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있었는데, 강도가 할머니 뒤에 와서 얼굴에 봉지를 씌우고 금목걸이를 가져갔어."


할머니께서 계셨던 곳은 우리집 앞이었다. 내가 말도 못하는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더운 여름에 항상 문을 열어놨던 그 곳이었다. 담배냄새도 안나던 그 아기자기하고 아기들 많던 동네에서 강도사건이라니. 그것도 뉴스에 나올법한 내용으로.


친구에게 연락처를 줘도 되냐고 물으니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그의 메세지를 집주인에게 전했다. 집주인도 추가적으로 연락을 더 하지는 않았다. 할머니께서 괜찮으신지 궁금하지만 알 방법이 없다.


보증금 관련해서는 업데이트가 없길래, 퇴실 10일 후 내가 다시 연락을 했다. 15만원을 제하고 준다고 하셨다. 내가 이사오기 전에 있었던 집 밖의 쓰레기를 치우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 관련해서는 아무도 믿을 곳 없는 지긋지긋한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한국의 원래 살던 집에 돌아왔다. 1년 후의 집은 조금 낯선 향기가 났다. 밴쿠버에 살면서, 종종 에어비앤비 요청이 들어오면 집을 빌려주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던 화장품이 동나있었다. 어차피 유효기간 안에 써야했던 것이라 괜찮았다. 다만 제자리에 있어야 할 소품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거나, 파손된 채 발견된 물건이 종종 있었다. 누가 범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에어비앤비를 하려면 내가 아끼지 않는 물건만 놔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밴쿠버 생활비에 단비같은 비상금을 책임지던 애어비앤비였지만 확실히 이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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