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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S Apr 30. 2024

정적 속에서 나만의 리듬을 연주하기

피아노를 치며 배우는 생활의 리듬

새로운 곡을 칠 때, 처음 악보를 더듬으며 음을 연주하다보면 손가락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박자를 맞추기도 어렵다. 그렇게 엉망진창인 첫 연주를 끝내고 나면 ‘이게 내가 알던 그 곡이라고?’ 하는 일도 있다.


그래도 일단 한 번 연습했으니, 동그라미를 친다. 그러고는 빗금을 치거나 색을 칠한다. 어쨌든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했다는데에 의의를 두는 것이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어색한 연주가 쌓이다보면 어색했던 박자도 천천히 악보에 맞춰지고 좋은 음을 낸다.


우습게도 완전히 다 마스터했다고 생각하는 곡도 메트로눔을 켜둔 채로 연주하면 미세하게 악보에서의 박자와 내 박자가 어긋나는 경우도 많다. 완벽하다고 느꼈지만 사실 어려운 부분의 직전에 맞는 건반을 찾기 위해 순간적으로 애를 쓰다보니 박자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반복 구간이 이어지는 부분은 괜찮다. 문제는 변주되는 지점이다. 이 부분에서는 박자를 놓치기 쉽다. 손가락이 편안해진 음과 음 간의 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가락 길이의 문제라기 보다는 손을 보지 않고도 해당 음이 어디있는지를 인식하고 보지 않은 채로 손을 자연스럽게 옮기는 것이다. 왼손과 오른손 연주 모두에 변주가 동시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더 어렵다.


삶이 연주라면


똑같은 하루하루는 어쩌면 연습을 위해 그린 동그라미일지도 모르겠다. 이 동그라미에 빗금을 치거나 색을 칠하는 일은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정형화된 이 악보같은 일상을 연습하는 일같다. 때때로 악보에 맞춰 박자에 따라 손가락을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는 손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기도 한다. 이 한 번의 우왕좌왕함만으로 우리는 피아노를 못 친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그 곡을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 것일 뿐.


생각해보면 나의 일상은, 내가 평생 쳐온 곡인지도 모른다. 아침 구간, 저녁 구간, 잠자기 직전, 잠드는 구간… 여러 구간들이 내게는 너무 익숙한 연주다. 그러나 나의 연주는 박자가 틀어져 있었다. 늦은 취침과 늦은 아침, 그리고 태평하고 느릿한 낮과 저녁 시간. 내가 목표하는 악보는 16분의 8 박자인데 나는 4분에 4박자 쯤 되는 느릿한 속도다. 그마저도 연주를 할 때마다 그 박자가 달라진다.


나는 정형화된 것을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연습 만큼은 어쩌면 정형화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아무 생각도 없이 눈을 감고도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겠다 싶다. 그래야만 내가 좀더 서툰 부분을 연습할 시간과 박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연주가 서툴다. 그래도 오늘 하루도 차근차근 조급하지 말고 악보를 읽어나가자. 손이 좀 뻐근해도 언젠가 이 움직임에 익숙해 질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용기내서 건반을 연주하자. 음이나 박자가 틀리는 것은 한동안은 스스로 너그럽게 여기는 것이다. 언젠가 숨쉬듯이, 아주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도입부를 연주하고, 미소를 머금게 하는 경쾌한 멜로디의 메인 파트를 잘 연주할 수 있게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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