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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 Jan 22. 2020

새내기 학생과 새내기 학부모

비교는 금물

비교는 금물


민혁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나와 와이프는 각자의 방식으로 육아를 배워나갔다. 와이프는 맘카페를 중심으로, 나는 책을 중심으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맘카페의 장점은 수많은 케이스가 축적되어 있어 동일한 케이스만 발견한다면 수월하게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책의 장점은 이론을 통해 없는 케이스도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을 준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잠든 밤이면 카운트다운 시작. 각자의 비행선은 우주를 향해 발사되어 탐사선처럼 수많은 별들에서 관측된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관측 결과를 가지고 우리의 행성에 비추어보는 일이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옛말 하나 틀린 거 없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 농사"며, "아이는 어른과는 다른 생명체". 관측 결과는 그렇게 하나씩 둘씩 폐기되었다.   


비행선은 지구로 돌아왔고, 우리 부부는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수 없이 많은 맘카페와 육아서에 나오는 바로 그거 "비교하지 말라" 비교의 대상은 엄친아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 비교 대상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흔한 말로 "라떼 금지". "엄마가 어렸을 땐 말이야", "아빠는 초등학교 때" 같은 말들은 금지. 그것만은 흔들리지 않는 육아의 원칙이 되었다.


민혁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열 명 내외의 또래 친구들이 있다. 같은 7살(작년 입학 기준)로 구성된 학급이어도 한글의 수준은 모두 다른 게 사실이다. 그건 우리 부부도 알고, 민혁이도 알고 있지만, 누구도 그걸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비교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민혁이는 자신이 아직 한글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민혁이의 한글 공부는 그 무렵부터였다. 다른 이들이 한글을 읽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느낀 다음부터. 사실 나 역시 더 늦어지면 학교에서 적응하기 어려울까 봐 초조하긴 했으나(와이프는 그런 면에서 담대했다. 때 되면 다 할 수 있다. 조급해하지 말자), 다행히 그때부터 민혁이도 서서히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나다부터 시작된 민혁이의 한글 공부. 공부는 누구나 하고 싶지 않다. 민혁이라고 다를 바 없었으나, 하루에 한 장. 딱 그 정도 양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하고 7개월 정도가 지나서 8살이 된 것이다.


민혁이가 얼마 전 공부를 왜 매일 하냐고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나는 민혁이에게 설명을 했다(간접적인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민혁아, 공부는 레고로 탑 쌓는 거랑 똑같아" "왜 똑같아?" "오늘 한 칸 쌓고 내일 한 칸 쌓으면 계속 높아지잖아. 그런데 오늘 한 칸 안 쌓고 내일 한 칸 안 쌓으면 어떨까?" "그럼, 탑이 높아지지 않지" "그렇지? 그래서 오늘 한 장 공부하는 건 오늘 한 칸 쌓은 거야. 그러면 다른 애들보다 탑이 높아지겠지?" "그래, 알았어, 하자, 공부"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설날을 기념해서 조부모에서 편지를 보내는 이벤트를 가지게 되었다. 그날 민혁이가 자랑스러운 말투로 말을 했다. "A가 '알'자를 모르더라고. 그래서 내가 알려줬어. 그리고 모르는 거 내가 대신 써줬어" "민혁이가 한글을 알려줬다고?" "응, A가 모르겠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쓰는 거야 라고 알려줬어" "어떻게?" "아 먼저 쓰고 리을을 쓰라고" "맞아, 민혁이 한글 배울 때 그렇게 배웠잖아. 아 먼저 쓰고 기역은 아그아그악, 니은은 아느아느안 이렇게 말야" "응, 나도 알아"


부모가 비교를 하는 것은 분명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다만 아이가 스스로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그걸 포기하는 방향이 아니라 채우는 쪽으로 바꿔줄 수만 있다면야, 그것만큼 좋은 '비교'가 어디 있을까. 오늘의 자신감이 언젠가는 좌절감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테지만, 그때도 우린 우주에서 찾은 관측 결과를 잊지 않고 오늘의 이 자신 있던 모습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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