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r Sera Sep 04. 2023

인생도 잡채처럼

레시피가 있다면


잡채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중 하나이다. 들어가는 재료의 가짓수도 많으며 재료마다 따로 손질해야 하고 게다가 잡채 양념을 만드는 게 고난이도에 해당한다. 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매번 할 때마다 맛이 다르다. 간장을 더 넣을까? 설탕을 더 넣을까? 간을 보다가 배 부르기 일쑤인 요리가 잡채이다.


어느 날 동서가 내게 '형님, 잡채 양념 쉬워요. 당면 봉지 뒤에 레시피 있잖아요. 그대로만 하면 진짜 맛있어요.' 하는 거다. 나는 속으로 '어디 갓 시집온 새댁이 훈수야, 훈수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고 당면봉지 뒤에 있는 레시피대로 잡채를 만들었다. 결과는? 성공적!


이렇게 훌륭한 맛이라니. 그동안 내 음식 솜씨를 탓했는데, 뒷면 레시피를 왜 보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제는 잡채 맛이 일정하다는 사실이다. 음식 솜씨가 좋다는 것은 언제 그 음식을 하던지 늘 같은 맛을 구현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맛이 검증된 레시피가 있다면 어떠한 요리도 두렵지 않게 된다. 당면 봉지의 뒷면 레시피가 이렇게나 쓸모 있다니 새삼 고마웠다.


사람들이 두려운 일이 있을 때, 고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유심히 보았다. 부모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배우자 또는 친구와 상의하기도 한다. 때로는 책에서 도움 되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아끼는 후배 J가 고민이 많다고 수화기너머 한숨을 쉬었다. '언니가 너무 보고 싶다'는 말에 다음 날 J를 만나러 대전에 간 적이 있다. J는 실직자인 남편에 애들 셋, 병든 노모를 모시는데,  살아가기가 막막하다며 손등에 눈물방울을 떨어트렸다. 불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무척 난감했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만으로는 J가 살아갈 이유가 될 수는 없어 보였다. 더 중요한 이유나 헤쳐나갈 방법 같은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을 찾는 것은 오로지 자기의 몫임을 우리 둘은 이미 알고 있다. 단지 내가 그녀의 인생에서 '당면 봉지 레시피'같은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그 답 앞에 벌써 담담해져 있는 너의 모습을 찾아보라고 말해주었다. 괴로울 때는 달달한 여행 두 컵, 몸이 아플 때는 무조건 낮잠 한 큰 술, 외로울 때는  친구의 전화번호 숫자 열한 알, 미래가 불안할 때는 꿈 목록 다섯 줄기. 살면서 헤쳐나가기 두려운 일을 만날 때 이런 인생레시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당신은 그런 레시피 있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놀라 맛있게 굽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