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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Sera Nov 30. 2023

달구어진 손

너무 뜨거우니까 내 손 잡지 마요


책은 또 다른 세상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아요. 그 안에 담긴 당신의 생각에 내 생각을 더합니다. 책을 읽으며 당신 생각을 더 할게요.




손이 달구어진 사람의 글, 이라고 말하곤 했다. 글은 사실 머리도 가슴도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쓰기를 반복적으로 훈련한 손만이
안정적이고 탄탄한 문장을 써낸다고.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문학동네, 29쪽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에 계란 프라이를 하거나 두부를 부칠 때, 불을 켜고 너무 오래 가열한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꽤 오랫동안 팬을 달군 후에 기름을 둘러야 눌어붙지 않는다. 사랑을 시작하는 남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마음이 충분히 달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 깊은 사랑을 속삭이기 힘들다. 모든 일에는 시간노력이 필요하고 준비연습이 필요하다.

손으로 하는 일은 대부분 쉽게 배우고, 배우고 나면 꽤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는 코바늘이었다. 코바늘은 배워도 배워도 그때뿐이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집에 가서 혼자 하려면 아까 배운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실만 손에 칭칭 감겨 맥이 풀리기 일쑤였다.  '나는 역시 못 하나 봐. 코바늘은 정녕 내 것이 아닌가 봐.' 하며 포기하곤 했다.


얼마 전 제주 사는 동생 진희씨가 동백꽃 북마크를 선물로 주고 갔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코바늘로 뜬 붉은꽃잎이 올망졸망 피어있었다. '나도 코바늘로 떠 보고 싶다'는 마음이 동백처럼 피어났다. 유튜브 영상을 아무리 천천히 돌려봐도 도무지 모르겠다. 동네 동생에게 유튜브영상을 먼저 보고, 나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천천히 배워서 떴다. 빨간 꽃잎을 하나하나 피어내어, 동백꽃을 30개 넘게 떴더니 이제는 손이 기억한다​. 동백꽃을 뜨며 내 손이 달구어졌다.


글을 쓸 때도 손을 달구어야 한다. 손이 달구어진 사람이 쓴 글은 어떤 글일지 상상해 본다. 맛있는 글일까, 뜨거운 글일까, 달달한 글일까...... 달구어진 손이 연필을 잡으면 왠지 기막힌 문장이 술술 나올 것 같다. 손을 달구면서 그는 무슨 일을 했을까? 아마 속으로 글을 생각했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겠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결국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하는 동안 마음이 달구어지고, 쓰는 동안 손이 달구어진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쓴다.(핸드폰 자판을 두드리는 나는 오늘, 오른손 엄지가 제일 많이 달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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