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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Dec 12. 2022

직장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 탐구 생활 : 직업(1)

"9 to 6 사무실 지키는 대가가 월급이라면,

내 월급이 짠 걸까 아니면 내 시간의 가치가 이뿐인 걸까."




6년 전 모임에서 절친 홍양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암표지자 검사 수치가 높아 큰 병원에 다녀왔고, 간암 2기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나이 34살. 꽃 같은 그녀에게 찾아온 시련 앞에서 친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예전처럼 아무 일 없는 듯 수다 떨고 웃어주는 것이었다.


그녀와 헤어진 후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쓰라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녀는 매번 보통의 범주 이상으로 깊고 깊이 고민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렸다. 그렇다. 그녀를 통해 죽음을 예습했다.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고, 평범한 것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나와 나를 감싸는 것들이 그대로일지라도, 내 안에서 삶을 대하는 방식이 알알이 달라졌다는 것을 매일매일 체감했다. 항상 생각하며 감사했다. 다행히도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 나의 건강, 나의 가족, 즐거움이 팡팡 터지는 축제의 현장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한 감사함. 고요함의 행복을 만끽하며 그저 감사에 감사를 더할 따름이었다.


딱 하나. 해답도 현답도 없는 물음표가 남았다.

'하루의 3/1을 투자할 만큼 나의 일이 소중한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소중하지 않다. '살다 보니 여기'라는, 식상하지만 정확한 대답 하나만 머릿속에 동동 떠다닌다. 좋을 때도 있었다. 번듯한 직장 덕분에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고, 명함 찍어 돌려도 부끄럽지 않은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일이 무료하거나 버겁더라도 어떻게든 버텼다. 퇴직까지 20년을 버티기에는 너무 나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동기였다. 그래서 자주 무너졌다. 회사명이 '때려치워'인가 싶을 정도로 말만 나오면 욕지거리뿐이었다.


출처 : pinterest


일을 사랑하고 싶다.

어휴. 무슨 사랑까지. 그래 봤자 결국 일인데. 하지만 매일 9시간(야근이 일상인 일터이니 9+@)을 사랑하지 않는 일에 쏟아내는 것이, 삶을 소중히 여기자던 나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사무실을 지키는 대가로 받는 게 월급이라면, 미안하지만 그것보다는 내 삶이 소중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으로 쓰고 싶다. 월급 때문에, 아니면 보는 눈이 있으니 그저 버티자고 달래고 싶지 않았다.


"니가 배가 불러서 그래. 월급 받고 사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니. 너 옛날에 취직 안돼서 울고불고하던 거 생각해봐라."

엄마와 이야기하고 나면 이내 철없는 사춘기 소녀가 된 것 같다. 이제 와서 왜 꿈 찾아 삼만리 하고 있냐는 엄마의 말에, '그래. 생각해보면 내가 변덕이 심했지.', '배 따시고(?) 여유 생기니 이런 고민을 하는 건가.' 한다. 생계를 이어나가야 할 워킹맘이 마냥 사랑 타령만 할 수는 없다.




6년간 교착상태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간 동안 잠시 도망칠 명분이 있었다. 아이 둘을 낳아 육아휴직을 내었고, 아이들과의 생활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틈틈이 고민하고 탐구했다. 매일매일 쓰고, 뒤적이고, 공부한다. 그리고 이제 복직을 기다리며 만감이 교차한다. 새삼 감사하며 내 일에 새로운 동기부여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여전히 사무실에 엉덩이 붙이고 있는 모습에 한숨만 쉴 수도 있겠지.


괜찮다. 무엇이 찾아와도 괜찮다. 충분히 고민했고 결과에 따라 새로운 길을 걸을 준비도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감사하다. 무엇이든 감사하다. 홍양도 꽃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도 그녀와 함께 꽃 같은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내 하루는, 우리의 하루는 당연한 것이 아니니까. 평범한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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