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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Feb 25. 2021

스타벅스 슈크림 프라푸치노 위드 판나코타

2021.02.24

‘책상에서는 머리를 차갑게, 침대쪽은 포근하게’ 라는 나름의 의도로 벽을 칠했더랬다.

도서관에 빌린 책을 반납하러 나간 김에 머리를 다듬으러 미용실에 갔다. 대충 길이만 다듬어달라고 했는데, 앞쪽의 머리카락과 뒤쪽의 머리카락을 얼마나 자를지 일자로 자를지 사선으로 자를지 물어보셨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머리 모양을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더. 단순히 머리카락을 일정한 길이로 정리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전문가와 일반인이 알고 있는 지식의 차이를 새삼 느꼈다.  나는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낯선 사람과 쉽게 대화를 이끌어가진 못해도 먼저 말을 걸어주면 나름 대답은 잘한다.  잠깐의 침묵 뒤에 미용사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소소한 대화를 했다. 나는 머리도 관리하기 귀찮아서 짧게 자르고 드라이도 약속 있을 때나 한다던가. 여러 손님을 만나시다 보니 내가 대충 어떤 부류의 손님 인지도 금방 파악하신 모양이다.
 같은 경우는 특별나게 원하는 스타일 없이 적당히 사람 같아만 보이면 되는 사람. 나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이 대충 원하시는 대로 자르셔도 상관없다고. 단지 상대방에게 선택지를 자유롭게 주면 오히려 당황스러우니 내가 그냥 적당한 선택지를 고르는 것일 .  

갑자기 대학시절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머리 길이가 허리까지 올까 말까 하는 길이였는데, 어떤 학생이 집에 가던 길에 미용 대회가 있는데 자기가 모델이 필요하다며 모델해주지 않겠느냐 말을 걸어왔었다. 지금이라면 재밌겠다며 좋다고 했을 텐데, 당시엔 낯을 가리는 바람에 아르바이트가 있다며 거절을 했다. 역시 그냥 따라가 볼걸.  금발로 탈색도 해봤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하며. 금발로 탈색도 하고  뒤엔 남색으로도 염색을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 다듬기는 끝나 있었다. 나의 개떡 같은 설명에도 미용사 선생님은 찰떡같이 머리를 잘라주셨다. 본인은 어떻게 잘라야 할지 몰라서 본인이 알아서 잘랐다고 하셨는데 제가 바로 원하는 게 이것이었습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미용실을 나와서는 바로 아래층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거의 밖에 나오지 않으니 한번 나올 때 이렇게 계획적으로 루트를 세운다.) 쿠폰이 하나 있는데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고른 메뉴는 슈크림 프라푸치노 위드 판나코타. 판나코타라는 바닐라맛 푸딩이 들어가 있는 프라푸치노다. 매년 요맘때쯤이면 슈크림이 들어간 메뉴가 잠깐 나왔다 단종이 된다. 예전에는 그래서 선물 받은 슈크림 라테 쿠폰이 있어도 메뉴가 단종이 돼서 쿠폰을 기한 내에 못쓸 뻔한 적이 있었다.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니 나는 취향이란 게 딱히 없는 사람인가? 쓸데없이 취향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었다. 알록달록한 장식물, 오래된 건물 금이 간    사이, 녹슨  이런 걸 보는 걸 좋아하다가도 단색, 무채색, 네모, 직선으로  건물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뭐지.  취향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너무 어렵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래서 나의 색깔이나 특징 같은 게 별로 없나 싶어 고민이 많았더랬다. every thing is nothing이라는 말은 이런 뜻으로 쓰인 말은 아닐 텐데. 나는 대체 뭐지?   그런 생각을 하던  음료가 나왔다. 그래.  슈크림이 들어간 메뉴는 상시 있는 메뉴가 아닌 거지? 사실 여기에 있는 메뉴 아무래도 상관없이 있으면  마시겠지만, 슈크림이 들어간 메뉴가 있다면  그걸 마실 거야. 그래 취향이 아예 없는 건 아닐 거야. 그래도 한편으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취향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이런저런 시도도 해볼  있는 거라고. 이런저런 신메뉴도, 이런저런 머리 색이나 모양도. 나와 안 어울릴진 몰라도 내가 재밌으면 그만이다. 갑자기 신이 난다.  어떤 재밌는 걸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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