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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Apr 27. 2021

럼 레이즌 밀크 티

2021.04.26

술을 마시면 안 되거나 운전할 예정이 있을 경우 마시면 안 됩니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무조건 보다는 가능성을 조금 열어두는 편이다. 그러니까, 좋아하지 않는 재료라도 어떻게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는다는 말이다. 이전에 여러 번 언급했는데, 말린 대추에 이어 건포도가 딱 그런 재료다.

그냥 건포도도 먹지는 않지만 모카빵이나 떡에 건포도가 들어있는 건 굳이 먹지 않는다. 어쩌다 들어있으면 건포도는 다 골라내고 먹는다. 하지만 럼 레이즌이 들어간 아이스크림과 버터크림 샌드 쿠키를 먹고 나서 깨달았다.  나에게 있어 건포도가 가진 가능성이란 럼 레이즌이다. 분명 크림 속에 건포도가 들어갔는데 건포도의 식감이나 맛은 안 나고 적당한 산미와 달콤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럼 레이즌은 말 그대로 럼주에 절인 건포도인데, 집에 럼주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

건포도에는 기름이 코팅되어있어 한번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건포도가 잠길만큼 럼주를 부어 6시간 정도 절이면 된다. 그러면 럼의 향이 건포도의 향을 부드럽게 감싸고 정돈해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건포도를 아이스크림이나 버터크림에 섞었을 때 따로 놀지 않고 조화롭게 만들어준다.

내 머릿속엔 럼주란 골드 럼의 이미지가 박혀있었던지라 골드 럼으로 절였다. 하지만 보통 화이트럼을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럼주 이외에도 와인이나 브랜디 같은 술에 절여도 상관없다. 개인적으로는 브랜디에 절인 걸 더 좋아한다. 브랜디는 와인을 증류해 숙성한 술이라 그런지 같은 원료인 건포도와 더 잘 어울리기도 하고, 향이 더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것이 우리 집에 있는 술은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요리용 술로 용도가 바뀐 듯하다)

 

파운드케이크를 만들 때 넣고 남은 럼 레이즌은 갈아서 휘핑크림(설탕을 넣고 거품 올린 상태)과 섞었다. 건포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갈지 않고 어느 정도 칼로 다져 넣어도 된다. 

(갈거나 다진 건포도를 냄비에 아주 약간만 끓여서 알코올을 날려도 되는데, 너무 오래 끓이면 술의 향도 같이 날아가 건포도 냄새만 났다.)

여기에 산미를 조금 더해주려고 크림치즈도 한 숟갈 넣었다.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럼 레이즌의 럼주도 휘핑크림에 스며들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바로 먹는 게 아니라 하룻밤 숙성을 시켜준다.(케이크도 크림을 바르고 나서 바로 먹는 것보다 하루 숙성하는 게 더 맛있다) 

이렇게 만든 크림은 이번에 진하게 우린 로열 밀크티에 얹어 마시기로 했다. 물보다 우유의 비중이 많아야 크림의 맛이 둥둥 뜨지 않기 때문이다. 홍차는 튀지 않고 깔끔한 향이 나는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티백을 사용했다. 밀크티에 설탕은 너무 달지 않게 한 큰 술만 넣었다. 어디까지나 설탕의 양은 본인의 기호에 맞게.

지금의 계절보다는 쌀쌀한 가을이나 겨울에나 어울릴 법한 맛이지만 맛있으면 계절은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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