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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나무 Dec 03. 2022

8. 뜻밖의 행운

비가 주룩주룩 온 삼일 전부터 무릎이 아프다. 사실 며칠 전부터 갈비뼈 쪽도 멍이 든 것처럼 아파서 어디에 부딪혔나 생각하고 넘겼는데, 무릎까지 아퍼오니 환우 카페에 가서 뼈 전이를 검색하게 된다. 어디가 아플 때마다 전이를 생각해야 하는 내 몸이 참 서글프다.


다행히 검색해 보니, 극단적인 여성호르몬 억제로 관절 쪽 부작용을 겪는 분이 많으시다. 지금 나는 나의 암수용체인 여성호르몬을 차단하는 약을 복용하고 주사를 맞은지 만 2년이 되었으니 이제 부작용이 나타날 때가 되긴 되었구나라며 이내 안심다.


나이 갓 40에 친정엄마도 없는 관절통을 얻어 구부정하게 걷는 요즘이지만, 전이가 아니라면 괜찮다. 이 정도쯤은 참아낼 수 있다.


오늘은 두 번째 일기에 언급되었던 친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 집에서 나와 차 한 잔을 하고 있었는데 동네 유방외과에서 유방암이라는 전화가 나에게 와서 같이 날벼락을 맞은 그 친구다. 그날, 친구는 혼이 나가버린 나를 추스리고 무사히 딸을 하원 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덜덜덜 떠는 나를 데리고 아이의 어린이집에 같이 가주고, 나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같이 와 주었다.

그리고 나선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진단-항암의 폭풍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즈음 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연락의 시작은 친구의  "내 인생이 이렇지 뭐" 라는 한탄이었다.

사실 그 친구도 가슴에 몽우리가 있었는데 검사를 미뤄왔다고 한다. 내가 유방암에 걸린 것을 보고 유방외과를 다녀왔는데 다행히 양성 혹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유방외과에 가서 유방초음파를 보면 서비스 같은 개념으로 갑상선도 같이 초음파를 봐주는 경우도 있다. 친구도 기꺼이 유방초음파와 함께 갑상선 초음파도 받았는데, 갑상선에서 암이 발견된 것이다.

내가 유방암 선고 받는 순간 그 친구가 같이 있을 확률, 친구가 유방암이라서 자기도 유방외과를 갈 확률, 갔는데 갑상선 초음파도 같이 검사받을 확률, 갑상선 초음파를 받았는데 암이 발견될 확률. 모두 동시에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친구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것을 감히 행운이라 부르겠다. 암을 일찍 발견하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이다. 아무리 착한 암이라고 불리는 그런 암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친구는 염병할 행운~ 이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암 환자가 되었다. 친구는 직장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다. 어렵게 병가를 내고, 진료를 다녔다. 병가 기간에는 나와 틈틈이 운동을 하고 산책을 했다.


둘 다 암 진단금으로 목돈을 받았다. 우리는 그 돈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만나서 주식 이야기를 해대며, "암 진단금으로 주식하는 정신 나간 여자들이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낄낄댔다. 그렇게 우리는 낄낄대면서 다소 무거운 우리의 현실을 가볍게 날려버렸다.


 서로 다니는 병원이 달라 3차 병원에 대해 비교도 하고, 불평도 하고 아픈데 신경도 안 써주는 것 같은 가족들 욕도 했다. 시간을 보내는 데는 뒷담화가 역시 최고였다.


서로가 수술하는 날은 위로와 응원도 해주었다. 나는 암에 걸린 것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는데, 동병상련이라고 이 친구와는 그렇게 힘듦과 서글픔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둘 다 이제 추적 관찰만 하면 되는 날이 왔다.


이제는 서로 병원 가는 날이야 하면 정기검진받으러 가는구나 시간빠르다라며 감탄한다. 서로 영양제가 뭐가 좋은지 권해주고 나는 이렇게 영양제 챙겨 먹는다며 영양제 배틀을 붙기도 한다. 날이 따듯한 날이면 같이 가볍게 산책을 하고 차 한 잔을 하는 일상을 보낸다.

암이라는 것은 이렇게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그러나 암에 걸렸다고 모두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저것을 더 염두에 둬야 하고, 살펴야 해서 불편할 뿐이었다. 나는 오히려 내 삶을 돌아보고 좀더 여유있게 살아가는 인생을 탐색해보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다만 건강을 한 번 잃어 본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면,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자신의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건강한 음식, 적당한 운동,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암에 걸리기 전에는 내 몸과 내 존재는 일과 가정, 양육 다음의 후순위 중의 후순위였다. 가슴의 혹을 발견하고도 직장이 바쁘고 맞벌이에 6살 아이 챙기기 바빠 일이 한가해지고 나서야 병원을 찾았던 나였다.

 

 혹을 발견하고 4개월이 지난 때였다. 종종 발견하자마자 병원에 갔더라면 전이 전에 발견하여 1기로 수술만 받고 끝나지 않았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오늘 지끈지끈한 내 무릎이 나에게 이야기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지금부터라도 나를 소중히 여겨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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