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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나무 Nov 29. 2022

 7. 유아에게 암에 대해 설명하는 법

내가 유방암 발병 시, 내 딸은 갓 만 5세를 넘겼었다. 처음에는 아무 일 없는 듯 생활했지만, 곧 엄마가 머리가 빠지고, 계속 침대에만 누워있는 이유를 딸에게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환우 카페에서 살펴보니, 아이들이 엄마의 빡빡 머리를 납득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거나, 변한 외모의 엄마를 낯설어 하는 유아들의 이야기가 올라오곤 했다.


 '암'이라는 병의 심각성을 모르는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무심코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이야기하고, 친구들은 그거 죽는 병이래!라는 반응을 보여, 아이가 큰 충격을 받고 집에 와서 아이가 엉엉 울었다는 글을 본 적도 있다.

이제 태어난 지 5년 된 아이에게 엄마가 큰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엄마의 외모가 변하게 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첫 항암을 하고 머리가 빠질 무렵부터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의 몸은 아프지만, 부디 내 딸은 상처받지 않고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남편과 상의를 하여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아이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첫째, 아이 앞에서 '암'이라는 단어 사용하지 않기.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주변인들의 암에 대한 이야기에 아이가 충격받지 않기를 바랐다.

둘째, 아이에게는 엄마가 지금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에 걸렸는데,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병원을 잘 다니면 엄마가 다시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 난다. 그때가 엄마가 다 나은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머리카락이 없을 때는 엄마는 잘 쉬어야 하고, 못 놀아줘도 이해해 달라고 딸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엄마가 머리카락이 없는 것이 좀 부끄러우니까 어린이집 친구들이나 선생님께는 비밀로 해달라고 딸에게 부탁을 하였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에 납득을 한 듯한 딸은 엄마가 등 하원을 못 시켜 주어도 아빠랑 어린이집도 잘 다니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딸이 큰 충격을 받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에 한두 번이던 것이 서너 번으로 주기가 좁혀졌다. 처음에는 환절기라 코감기인가 해서 방에 가습을 하고, 물을 많이 마시게 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틱이었다.



틱장애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신체 일부분을 빠르게 움직이는 이상 행동이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함. [정의] 틱은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나 목, 어깨, 몸통 등의 신체 일부분을 아주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전자를 운동 틱(근육 틱), 후자를 음성 틱이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의 틱 증상이 모두 나타나면서 전체 유병기간이 1년을 넘는 것을 뚜렛병(Tourette’s Disorder)이라고 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내가 수술을 받고 일주일쯤 집을 비우고 난 후였다. 딸아이가 잘 납득했다고, 엄마가 아프지만 그럼에도 잘 생활해서 다행이라고, 나쁜 상황에서도 딸을 보며 위안 삼던 나였다. 그런 나는 아이가 킁킁거릴 때마다, 딸아이를 보며 너도 아픈 엄마를 보며 불안하고 힘들었구나생각 가슴이 .


킁킁거리는 빈도수가 늘어나자 주변사람들이 왜 킁킁거리니?라고 아이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겠다며 저절로 나온다고 대답했다. 몇 분에 한번 씩으로 주기가 짧아지자 병원에 가야하는 건 아닌가 싶어 인터넷을 뒤지고, 병원을 검색해본다. 아이의 킁킁거리는 주기가 점점 짧아질수록 초조해다. 내가 아프다는 것은 안중에 없을 정도로 아이가 걱정되 시작했다.

그러나 틱에 대해 충분히 사례를 검색하고 살펴본 후, 우선 몇 개월정도는 지켜보기로 남편과 함께 결정했다. 딸의 틱 현상을 언급하지 않고 모른 척하기. 하던 학습활동 모두 중단하기, 야외활동 많이 하기, 미디어 노출 줄이기등의 노력도 함께 했다.

2년이 지난 딸아이는 지금 어떨까?


지금도 아이는 그때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 머리카락 빠지는 병 걸렸을 때 있잖아~"라고 운을 띄우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며칠 전에는 어느덧 머리카락이 아프기 전 만큼 자란 내가 외출을 하기 위해 머리를 묶고, 화장을 하며 거울을 보고 있을 때, 딸아이가 새삼스럽다는 듯  말을 했다.

"와, 엄마 이제 아프기 전 모습 같아.머리도 길어지고."

 말을 하며 아이는 엄마가 머리가 길면 엄마의 병이 다 나은 것이라고 했던 나의 말을 떠올리기라도 한 해맑게 웃다.


아이의 킁킁거리는 틱은 사라졌다. 대신 눈을 깜빡거리고, 윗 입술을 코 쪽으로 찡긋거리는 틱이 생겼다. 그러나 빈도가 적어지고, 킁킁거리는 소리에 비해 주변 사람들이 인지하기 힘든 틱으로 옮겨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웹툰인 어쿠스틱 라이프에서  나온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모두가 나에게 객관적인 이세상에서 끝없이 예뻐해주는 한 사람 네가 가질 수 있다면.'

작가가 자신의 딸을 향해 하는 말이다.


나도 나의 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이 구절을 읽고 메모를 한 후, 아래처럼 일기를 썼던 날이 있다.


사랑하는 딸아.

모두 너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이 세상에서

엄마는 어떤 판단없이조건없이

끝없이 널 예뻐할 한 사람이 되어줄거란다.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들고 상처받더라도

네가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넘치는 사랑 엄마가 계속계속 줄게.


 딸 때문에 나의 그 힘든 여정을 견뎠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나는 오늘도 운동하고 식단관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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