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변 자체는 작았으나 내유림프절에 전이가 발견이 됐다. 흉골 안쪽의 림프절이라 수술과 치료가 까다로워 기수가 1기에서 3기로 올라갔다. 수술이 힘든 곳이라 항암을 먼저 받기 위해 유방외과에서 종양내과로 옮겨 진료를 받게 되었다.
항암약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증식하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약이기에, 우리 몸의 비교적 분열이 빠른 세포들도 같이 타격을 받는다. 예를 들면 모낭, 점막, 손발톱, 면역세포 등이다. 그래서 몸의 모든 털이 빠지고, 몸에 점막이 있는 신체기관이 손상되어 구토, 속 쓰림, 구내염, 치질, 다래끼 등의 부작용이 일어난다. 손발톱은 쉽게 빠지거나 색과 모양 등의 변형이 일어난다. 또한 면역세포들도 파괴되어 신생아와 같이 면역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다 힘든 부작용이지만, 그중 환자들을 제일 힘들게 하는 건 단연코 구토와 탈모 증상일 것이다.
그중 오늘은 탈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탈모는 내가 진짜 암 환자 되었구나 실감하게 하는 상징적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첫 항암이 있고 2주 동안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혹시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 걸까 헛된 희망을 품기도 하였지만 2주가 지나면 손 대기가 무섭게 머리카락이 떨어진다. 이때 이제 주변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되겠구나 하는 상실감이 몰려온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머리카락이 빠진다며 울어댄 것이 어제인데, 오늘은 내 머리카락이 마늘대에서 마늘쫑 뽑는 것처럼
(사실 안 뽑아봤지만 삼시 세끼에 공효진 님이 뽑는 것 보니 비슷할 것 같다.)
약간의 힘을 주면 두피에서 쑥- 뽑혀 나오는 게 신기해서 방 한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머리카락을 쏙쏙 뽑아대며 시간을 보낸 날도 있었다.
마늘쫑 뽑듯 뽑아낸 머리카락들
머리카락이 이렇게 빠질 때면 암 환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머리 삭발을 할 것인가, 그냥 자연스럽게 빠지는 대로 둘 것인가.
각각의 장단이 있기 때문에 나도 큰 고민이 되었다.
삭발을 하는 이유는 여기저기에 빠지는 머리카락 뒤처리를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자고 나거나, 샤워하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있다. 머리가 어딘가에 닿기만 하면 머리털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동물들이 털갈이하는 양 집안 여기저기에 머리카락이 굴러다닌다.삭발을 하면 한꺼번에 이런 머리카락을 정리해버리는 것이니, 머리카락을 매일 치우는 수고를 덜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세이빙을 하면 빠지지 않고 면도가 된 머리카락 조각들이 나중에 빠져 샤프심처럼 침구나 피부에 박히는 단점도 있다.
머리카락을 삭발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면 머리카락을 매일 치워야 하는 수고가 있지만 샤프심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치명적 단점이 생존력이 강한 머리카락은 항암 8차 동안에도 빠지지 않고 버티는데 이게 사람을 골룸으로 바꾸어 놓는다.
진짜 딱 이정도 머리카락이 남는다.
환우들이 집에서는 답답해서 비니를 쓰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흉측한 골룸 머리가 싫어 삭발을 선택하곤 한다.
나는 어떤 선택을 했냐면?
골룸이다. 목덜미에 박히는 샤프심이 상상만 해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늘대에서 마늘쫑 뽑듯 그렇게 머리카락을 뽑아댔다.
이 시기에, 머리카락뿐만이 아닌, 신체의 모든 털들도 다 빠진다. 코털, 눈썹, 속눈썹, 음모, 겨드랑이 털, 다리털 등 몸의 대부분의 털이 빠져서 無毛한 사람이 된다.
무모한 사람이 되면 비로소 조물주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코털이 없어 코에 벌레가 들어가기를 반복하고, 속눈썹이 없어 이마의 땀이 눈에 들어가 눈이 따갑고, 햇빛이 손눈썹 그늘 없이 눈에 직접 들어와 눈이 부실 때마다, 조물주는 인간의 장치를 치밀하게 계획하여 만드셨구나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털은 미용이 아닌 쾌적한 삶을 위한 최적의 장치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탈모가 상실감을 줄지언정, 나는 이때 가발, 모자 쇼핑을 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며 보냈다. 평소 모자를 즐겨 쓰지 않았던 나는 모자가 주는 새로운 스타일링에 빠졌다. 항상 잘 정돈되고 세팅된 가발을 쓰고 암 선고받을 때 같이 있었던 친구를 만나러 갈 때면, 친구가 하는 "머리 스타일은 어째 아프고 나서 더 좋아졌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같이 웃기도 하였다.
나는 항암을 할 때 나의 상태에 대해 의료진들에게 나는 질문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약을 먹으라면 먹어가며, 버티라면 버티며, 의료진을 한치 의심 없이 신뢰하며 그렇게 항암 8차, 반년을 버텼다. 게으르고 겁 많은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고 해낼 것이라고, 병원 대기실에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던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