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을 받은 밤, 아이가 자는 밤에 남편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리고 나서는 치료 방향이 결정될 때까지인 3주동안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앞으로 결정하고 해야 할 것이 내 앞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까지 내 인생에서 3차 병원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수술한 적도 없었다. 아이가 폐렴에 걸려 동네 2차 병원 정도를 방문한 정도였다.
암에 걸려 찾아가게 된 것이 나의 첫 3차병원의 경험이었다.
동네 유방외과에서 의뢰서를 받고 우리나라 4대 메이저 병원이라는 3차 병원의 암 센터에 긴장된 마음으로 첫 발을 디뎠던 날을 생각해본다. 3차병원은 생각보다 크고, 생각만큼 복잡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곳은 수 많은 환자였다.
암 센터. 그곳에서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모두 암 환자라는 것이다. 3차 병원의 암 센터는 암이 의심된다는 것으로는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방문할 때면 대기가 3-4시간씩은 걸리곤 했다.
그런 암센터를 방문할 때마다 내 마음을 두드린 감정은 흔히들 떠올리는 불안과 두려움보다는 의외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위로였다.
그곳에선 비율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팠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암에 걸렸다는 것은 같았다. 이런 점은 3차 병원의 암 센터는 나에게 모순되게도 위로를 주었다.
이렇게 암에 걸린 사람이 많구나. 암이란 것은 어리고 늙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찾아오는 것이구나.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성격이 예민해서, 생활습관이 잘못되어서, 전생을 죄를 지어서 암이 찾아온 것이 아니구나.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도,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교통사고와 같이 삶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의 일부분일 뿐이구나.
암센터를 다니면서 든 이런 생각들은
왜 하필 나인가?에매몰되어 암의 원인 찾기에 몰두하며, 무의식중에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고 죄책감에 빠졌던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주사실에서 항암주사를 맞는 사람들을 본다. 겉보기로는 전혀 환자 같지 않은 젊은 청년이 수혈을 받고 있다. 수다스럽게 전화를 받고 있는 중년 부인이 항암을 받고 있다. 한 노인은 주사를 받으며 노곤하게 낮잠을 자고 있다. 가끔 식사를 하러 소아암 센터 쪽으로 갈 때면 민머리의 어린아이들을 볼 때도 있다. 그들 가족은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다. 암 센터에서의 시간은 질병도 살아감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또한 의외로 항암과 직장 생활을 병행해나가는 환우들도 많다. 비록 체력은 이전에 비해 떨어졌지만 자신의 생활을 묵묵히 이전과 변함없이 이어나가는 분들이다.
최근에 본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온 주인공은 암으로 먼저 부인을 떠나보내고 4남매를 키우는 남편이었다. 그 가족에게 오은영 박사님이 내린 솔루션은 하늘에 있는 엄마를 맘껏 그리워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질병, 건강, 살아남기 등에 집중한 나머지 하루하루가 너무 비장하다고 언급하였다.
이 편을 보고 내 처지가 떠올라 보면서 많이 울었다. 하지만 나 또한 바랄 것이다. 가족이 나로 인해 비장해지지 않기를. 오히려 그들이 일상을 가볍게 웃으며 살아 나갈수 있기를.
나 또한 나 자신에게도 매일 되뇐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던지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오늘의 일상을 살고, 오늘을 나답게 사는 것. 그것만이신이 나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