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26원수
이야기를 시작하며
파리에 체류한 경험이 있거나 파리를 여행했던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 '원수들의 길(Boulevards des maréchaux)'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수들의 길'은 파리 1존을 둘러싼 19개의 대로(boulevard)를 부르는 명칭으로, 파리 외곽순환도로 바로 안쪽에 자리 잡고 있죠. 1864년 이 19개의 대로 이름이 각각 프랑스 육군 원수 19명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까닭에 이후 '원수들의 길'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파리 1존을 둘러싼 '원수들의 길'이 19명의 육군 원수는 유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804년 황제로 즉위한 뒤 임명한 26명의 원수들 중 일부였습니다. 아니, 나폴레옹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병력을 거느렸길래 중장 대장도 아닌 원수를 26명씩이나 임명했냐고요? 원수가 저렇게 많은 것은 사실 '프랑스 육군 원수'가 대장 위의 계급이 아닌, 훌륭한 장군에게 수여하는 '칭호(titre)'인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랑스군의 장성 계급은 Général de brigade 와 Général de division 둘 뿐인데, 상위 계급인 Général de division 가운데서 공훈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내리는 칭호가 '프랑스 육군 원수' 였던 것입니다.
'원수(maréchal, marshal)'라는 명칭은 카롤링거 왕조 때부터 존재했는데, 이 명칭의 기원은 왕실의 말을 관리하는 사람을 지칭했던 옛 독일어 단어 maraschal 로 추정됩니다. 말과 기병대는 전장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말을 관리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한 직책이었죠. '원수'의 직무 범위와 권한은 점점 확대되었고, 15세기에 이르면 이 명칭은 왕실의 말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육군대신(connétable) 휘하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뿐만 아니라 역대 프랑스의 국왕들도 원수를 여럿 임명했습니다. 성왕 루이의 치세에는 8명의 원수가 있었고 프랑수아 1세는 3명, 앙리 2세는 4명의 원수를 두었죠. 1577년 재정상의 문제로 현역 원수의 수를 4명으로 제한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도 앙리 3세는 7명, 앙리 4세는 11명의 원수를 거느렸습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재위 기간 동안 무려 51명의 원수를 임명하기도 했지요.
프랑스 원수의 상징인 원수봉. 원수봉의 문양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그러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자 원수직은 1793년 2월 21일에 공표된 칙령을 통해 완전히 폐지되었으며 이후 11년 동안은 프랑스에 원수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804년 5월 19일,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이 국가의 관료체제를 정비하면서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군부를 포섭할 방책의 일환으로 원수직을 부활시킵니다. 프랑스 제국에서도 원수는 군인의 최고 계급이 아니라 관료제적인 칭호로, 의전 서열 5위 - 황제, 황후, 황실 가족, 대관(grands dignitaires), 각 부처 장관 다음 - 였으며 황제로부터 '형제여(mon cousin)'라고 불렸습니다. 원수들은 프랑스군의 핵심 인물로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릴 수도 있었지요.
각자의 재능과 개성(?)을 가지고 나폴레옹과 동고동락했던 26명 제국원수들의 흔적은 '원수들의 길' 이외에도 프랑스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집과 현재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생가,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의 그림과 조각, 앵발리드에 보관되어 있는 소지품들, 학교 이름, 광장 이름, 개선문의 부조... 오스테를리츠 역(Austerlitz)이나 바그람 역(Wagram) 같은 파리의 지하철역 이름들까지도 그들이 참전했던 전투와 관련이 있지요. 또한 그들의 이미지는 나폴레옹 시대를 다루는 많은 역사소설, 게임, 영화, 만화 등을 통해서도 꾸준히 재창작되어 오고 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 <La Distribution des Aigles>. 제국원수들이 나폴레옹 앞에서 원수봉을 들고 서 있습니다.나폴레옹 시대에는 '모든 병사들은 탄약주머니 속에 원수봉을 넣어 가지고 다닌다(Tout soldat porte dans sa giberne le bâton de maréchal)'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실력에 걸맞는 지위를 노릴 수 있다는 말이자, 여러 제국원수들이 사병에서부터 진급하여 원수의 칭호를 받았음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급변하는 혁명의 시대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 주었고, 제국원수들은 자신의 능력과 행운을 발판 삼아 그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대는 한때 영광을 누렸던 그들을 파멸로 몰아넣거나 쓸쓸히 잊혀 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1185년 공식적으로 최초의 '원수'가 임명된 이래 2019년 현재까지, 프랑스에는 총 342명의 원수가 존재했습니다. 그 중 나폴레옹과 함께했던 제국원수 26인의 삶이 특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주목받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26원수> 매거진에서는 이 26인 원수들의 삶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워낙 유명하신 분들이라 영문위키/불문위키가 굉장히 잘 정리되어 있어서(...) 위키백과의 번역판 수준으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료를 많이 수집하다 보니 예상보다 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본 글이 한 시대를 살아갔던 인물의 삶을 멋대로 왜곡하지 않고 풀어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폴레옹이 임명한 26인의 원수 LES MARECHAUX DE NAPOLEON
(알파벳순이며, 각 인물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나 앞으로 나올 순서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샤를 피에르 오쥬로 Charles Pierre AUGEREAU
장바티스트 베르나도트 Jean-Baptiste BERNADOTTE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 Louis Alexandre BERTHIER
장바티스트 베시에르 Jean-Baptiste BESSIÈRES
기욤 마리 안 브륀 Guillaume-Marie-Anne BRUNE
루이 니콜라 다부 Louis Nicolas DAVOUT
로랑 드 구비옹 생시르 Laurent de GOUVION-ST.CYR
에마뉘엘 드 그루시 Emmanuel de GROUCHY
봉 아드리앙 자노 드 몽세 Bon Adrien JANNOT DE MONCEY
장바티스트 주르당 Jean-Baptiste JOURDAN
프랑수아 크리스토프 켈레르만 François Christophe KELLERMANN
장 란 Jean LANNES
프랑수아 조제프 르페브르 François Joseph LEFEBVRE
에티엔 자크 마크도날 Étienne Jacques MACDONALD
앙드레 마세나 André MASSÉNA [본명 안드레아 마세나 Andrea MASSENA]
아돌프 에두아르 모르티에 Adolphe Édouard MORTIER
조아섕 뮈라 Joachim MURAT
미셸 네 Michel NEY
니콜라 샤를 마리 우디노 Nicolas Charles-Marie OUDINOT
도미니크 카트린 드 페리뇽 Dominique-Catherine de PÉRIGNON
클로드 빅토르 페랭 Claude Victor PERRIN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Józef Antoni PONIATOWSKI
장 마티외 세뤼리에 Jean Mathieu SÉRURIER
장드디외 술트 Jean-de-Dieu SOULT
루이 가브리엘 쉬셰 Louis Gabriel SUCHET
오귀스트 프레데릭 비스 드 마르몽 Auguste Frédéric VIESSE DE MARMONT
참고자료
BANC Jean-Claude, Dictionnaire des maréchaux de Napoléon, Pygmalion, 2013.
https://fr.wikipedia.org/wiki/Mar%C3%A9chal_de_France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퍼블릭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astoni_da_maresciallo,_1851-6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