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에 앉는 순간, 청소에 대한 짜증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 소변을 서서 싸는 남자와 앉아 싸는 남자. 그중에서도 나는 전자였다. 30여 년 동안 살아오면서 허리와 두 다리를 꼿꼿이 세운 채 변기 앞에 서는 게 나에겐 당연했다. 집에서 종종 조준에 실패하면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을 흘려버린 쓸쓸한 패잔병이 되어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는 적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남자의 신체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딱, 지금의 아내와 같이 살기 전까지만 말이다.
"이제부턴 앉아서 해결해!"
인생을 통틀어 입식 소변만 줄곧 고수해온 나에게 아내의 제안은 꽤나 당황스러웠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다. 나는 강력하게 주장했다. 분수대의 오줌 누는 아기 천사 동상도 허리를 쭉 편 채 서 있지 않냐! 아기 천사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이것이야말로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온 남자의 자세 아니냐!
아내는 지지 않고 나의 말을 맞받아쳤다. 너는 아기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고 동상은 더더욱 아니다! 화장실이 지저분해진다! 변기를 함께 쓰는 입장에서 너무한 것 아니냐! 몇 번의 다툼 끝에 우리는 입장을 정리했다. 서서 소변 보기를 계속하는 조건으로 내가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맞는 일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서서 볼일을 보는 쪽이 앉는 것보다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한 게 사실이니까. 화장실을 더 많이 더럽히는 쪽이 화장실을 치우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했다. 기왕 화장실을 치우게 된 이상, 나는 서서 소변을 볼 때마다 신경 써서 화장실을 관리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웬걸. 청소를 하다 보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처음엔 서서 싼 뒤에 샤워기로 변기만 간단하게 치우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예상보다 먼 거리의 바닥까지 소변 방울이 튈 때도 있었고, 매일같이 화장실 바닥과 변기에 물을 뿌리다 보니 공간이 지나치게 축축해졌다. 물 낭비라는 생각도 들고, 치우는 게 점점 귀찮아지기도 하고. 아, 나는 왜 더러운 짓을 사서 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허무감마저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변기 커버를 내리고 자리에 앉아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은 어색한 느낌도 들었지만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앉는 게 더 익숙해졌다. 바지와 속옷을 모두 벗어야 한다는 게 조금은 불편했지만 볼일을 본 후에 샤워기로 이곳저곳을 치우는 일보다는 수고가 덜했다.
입식 소변에는 필연적 단점들이 있다. 보통은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변기를 향해 고공낙하를 하게 되는데 이때 다량의 방울들이 이곳저곳으로 튀게 된다. 약간의 조준 실패가 대참사를 불러일으킬 때도 있고, 의도치 않게 물줄기가 두 갈래로 펼쳐지는 순간에는 물을 뿜는 샤워기를 보는 것만 같은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좌식 소변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이런 문제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바닥이 더욱 깨끗해졌고 변기 내부의 불결함도 개선되었다. 매일 물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니 화장실 바닥도 매번 축축하지 않고 뽀송하게 관리가 가능했다. 변기에 다소곳이 앉는 순간, 소변에 대한 많은 문제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쯤 되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앉을 걸. 나는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던 걸까. 심지어 주변에 물어보니 이미 '앉아 싸기'를 실시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자취를 하다 보니 자신의 화장실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서, 나처럼 결혼 후에 아내와 공유하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고 싶어서, 서서 쌀 때 바지에 소변이 튀는 게 싫어서, 제각각의 이유로 이미 많은 친구들이 좌식 소변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것은 비단 나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일본의 남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화장실 내부에 서서 소변 보기를 금지하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 있기도 하고, 젊은 남성들 대부분이 앉아서 소변 보는 걸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는다고 한다. 2017년 일본 화장실 연구소 설문 결과를 보면 일본 남성의 44%가 좌식 소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변기 위에 앉는 남자가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대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앉아서 소변을 보는 건 남자의 신체 구조상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기에 앉으면 전립선의 굴곡이 심화되어 오줌 누기가 다소 어려워진다는 게 그 이유다. 서서 소변을 해결하면 전립선을 직선에 가깝게 만들 수 있어 남자가 오줌을 누기에 편한 자세가 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검색을 해본 뒤에는 마음이 바뀌었다. 튼튼한 남성이라면 앉으나 서나 건강상 큰 차이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이곳저곳 많이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한국전립선협회에서는 중년 남성들로 하여금 앉아서 소변 보기를 적극 권장하고 있었다. 앉는 자세는 복압을 활용할 수 있어 잔뇨 배출에 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남자가 앉아 싸면 그래도 좀 이상하지 않아?"
처음 '앉아 싸'를 시작할 때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다른 친구가 이렇게 답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런데 1년 넘게 화장실에서 '앉는 남자'로 지내보니 정말 그렇다.
내가 저런 질문을 했다는 게 부끄러울 만큼, 앉아 싸는 건 내가 남자라는 것과는 정말이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보다 깨끗하게 화장실을 쓰고 싶은 사람, 이 공간을 사용하는 타인을 배려하고 싶은 사람이 선택하는 소변의 한 자세일 뿐이다.
일본의 어느 조사에 따르면 소변을 서서 볼 경우 1회에 약 2300방울이 화장실 사방으로 튀며 그 거리는 최대 3m라고 한다. 이는 소변 방울이 변기 주변 바닥뿐만 아니라 세면대나 칫솔까지도 충분히 튈 수 있다는 얘기다.
약 30년 동안 화장실 청소 한번 하지 않던 불효자 때문에 수억만 방울의 오줌과 사투를 벌였을 어머니에게, 몇 달간 수만 방울의 지린내 공격을 감행하던 남편 때문에 괴로웠을 아내에게, 그리고 죄 없는 가족들의 칫솔에게 이제라도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서다'를 영어로 하면 'Stand'가 된다. 그리고 'Stand'의 다른 뜻 중에는 '참고 견디다'라는 의미도 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서서 소변 보기'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로 하여금 어느 정도의 지린내를 '참고 견디라고' 요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타인과 화장실을 함께 쓰는 입식 소변 생활자들이여, 자신의 흔적은 스스로가 책임지고 청소하는 게 어떨까. 그러다가 문득 매번 화장실을 치우는 게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나처럼 변기 위에 털썩, 주저앉으면 그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