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없던 시절, '몸테크' 하나만 믿고 무작정 떠났던 미국 여행
뉴스에서 '몸테크'라는 신조어를 보았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청년들이 좋은 집을 바로 구매하기가 어렵다 보니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저평가된 집을 미리 사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녹물이 나오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면서 추후에 집값이 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미래의 수익을 위해 지금의 고생을 젊은 몸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몸테크는 꼭 부동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는 몸테크를 수시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맛집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서 있는 것도, 한정판 신발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가게 앞에 텐트를 치고 기다리는 것도, 다 몸으로 고생하면서 무언가를 얻는 일종의 몸테크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새로운 추억을 저축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무릅쓰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돈을 아껴가며 더 큰 경험에 도전하는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자신만의 몸테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온갖 힘듦을 견디며 추억을 얻고자 온몸을 투신하는 사람들! 이것이야말로 건강할 때 한 번쯤 도전할 수 있는 재테크가 아닐까 싶다.
20대 시절, 나도 몸테크에 가까운 여행을 해본 적이 있다. LA에서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자마자 한 달 동안 미국 전역을 홀로 돌아다녔다. 나이는 젊고, 돈은 없고, 패기만 넘치는 시절이었다. 기꺼이, 그리고 마음껏 살 수 있는 것이라곤 고생밖에 없었던 때였다. 나는 통장에 있던 100만 원으로 숙박비, 교통비, 식비 등을 모두 해결하기로 했다.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 많은 도시에서 추억을 만들겠다!
LA에서 시작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을 거쳐 동부의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를 지나 마지막에는 남부에 위치한 뉴올리언스까지 가는 코스였다. 한 도시에서 평균 5일 정도 머무는 식이었다. 저가 비행기표를 여기저기서 샀지만 교통비를 빼고 나니 남은 돈이 얼마 없었다. 숙박은 무조건 게스트하우스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호기롭게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났고, 나의 건강도 그날부터 서서히 저 먼 곳으로 떠났다. 시작은 LA 공항에서였다. 숙박비를 아껴보겠다고 공항에서 노숙을 했는데 예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패딩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잤지만 엄동설한의 공항 바닥은 냉동실 같았다. 자고 일어나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여행이고 뭐고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은 듯한 근육통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뉴욕에선 일주일을 머물렀다. 그 유명하다는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한 편을 보고 싶었지만 가진 돈이 부족했다. 방법이 없을까 수소문하다 보니 매일 극장 앞에서 복권처럼 추첨을 하는 할인 행사가 있었다. 당첨이 되는 사람은 기존 티켓 가격에서 5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맨 앞줄에 앉아 공연을 보는 식이었다. 일주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 행사에 참여했고, 단 한 번의 성공 없이 꾸준한 실패를 겪었다.
여행이 길어지다 보니 식비도 큰 문제였다. 괜찮은 음식을 사 먹을 충분한 돈이 없었다. 나는 맥도널드에서 달러 버거를 점심과 저녁마다 사 먹었다. 달러 버거는 말 그대로 가격이 1달러 정도였는데 문제는 내용물이었다. 빵, 패티, 피클 두 개가 햄버거의 전부였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졌다. 고민 끝에 나는 마트에서 커다란 식빵 한 줄과 땅콩버터 잼을 샀다. 배가 고플 때마다 식빵에 땅콩버터를 발라 입안에 욱여넣었다. 이것은 여행입니까, 아니면 서바이벌입니까?
필라델피아에서 뉴올리언스로 갈 때는 '그레이하운드'라는 고속버스를 탔다. 별생각 없이 매표소에서 버스값을 결제했는데 스무 장도 넘는 티켓이 내 손에 쥐어졌다. 알고 보니 뉴올리언스까지 버스로 가기 위해선 세 번 넘게 환승을 해야 했고 들리는 정류장도 스무 곳이 넘었다.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꼼짝없이 버스 안에 갇힌 채 24시간 넘게 고속도로 위에 내 몸을 맡겼다.
목적지에 가까워졌을 때 버스 안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피곤함에 녹초가 된 나는 비몽사몽 버스 안에서 사경을 헤맸고 뉴올리언스에 도착하는 게 신난 뒷좌석의 흑인들은 즉흥 랩을 시작했다. (여기서 랩이 왜 나와?)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박자에 맞춰 즉흥 노래를 불렀다. (대체 왜?) 버스 안은 금세 떠들썩한 파티장이 되었고 그 파티에서 소외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너무 졸렸고, 내리고 싶었고, 어서 빨리 샤워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여행 내내 죽도록 고생만 한 건 아니다. 즐거운 추억도 꽤나 많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과 함께 값싼 맥주를 마시며 흥청망청 취했던 시간들, 시애틀에서 본 낙서 가득한 커트 코베인의 벤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친구들과 함께 걷던 날, 아끼고 아낀 돈으로 영화 <나 홀로 집에>에 나왔던 뉴욕 아이스 링크장에서 스케이트를 탔던 것처럼 쉽게 잊을 수 없는 풍경과 순간도 있었다. 추억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돈이 없어야만 살 수 있는 추억도 분명 존재한다.
미국에서의 숱한 고생들이 마냥 쓸모없던 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서술한 모든 에피소드들은 십 년 넘게 나의 든든한 술자리 안주가 되어주었다. "내가 미국에서 버스를 48시간 동안 탔는데 말이야!(시간은 좀 더 뻥을 쳤다)", "공항에서 노숙해보면 어떤 줄 알아?(은근히 행복한 경험처럼 미화했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올라가 봤어?(사실 바람이 너무 세서 눈도 제대로 못 떴다)" 등등.
친구들은 이런 나의 이야기가 재밌다며 소주 한두 병을 더 주문해주곤 했다. 덕분에 얻어먹은 술도 꽤 많다. 온몸을 투신한 끝에 마르지 않는 술자리 에피소드를 얻었으니 이 정도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이 글이 <오마이뉴스>에 발행되면 나는 소정의 원고료를 받게 될 것이다. 체력과 정신력을 갈아 넣은 미국에서의 여행이 마침내 진정한 금전적 수익을 창출해내는 순간이다. 고생 끝에 얻은 추억이 이렇게 돈을 번다. 추억팔이도 가끔은 돈이 된다. 부동산이 아니라도, 큰 수익을 벌지 못해도, 제법 괜찮은 몸테크도 이렇게 있다. 모두의 몸테크에 즐거운 추억이 부가 수익처럼 따라오기를 바란다.
*해당 글은 <오마이뉴스>에 발행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