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에서 5살이 되던 겨울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접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몸이 유난히 작았던 나는 유난히 높은 의자를 써야만 했다. 나의 작은 손으로 건반을 눌렀을 때 그 커다란 악기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나다니, 나는 금세 피아노에 빠졌다. 그렇게 2년을 쳤고,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작은 연주회가 열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7살의 나이에 요한 파헬벨의 캐논 D장조를 완곡했고, 이제는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곡 하나, 두 곡을 연주했다. 학원생들 중 오직 나만이 두 곡을 연주했다. 학원 원장님은 나에게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말을 하자면 그것은 재능이 아닌 오직 연습으로 만들어진 결과였다. 나는 완벽하게 치기 위해 그 나이에 주말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대략 8시간을 피아노만 치며 보냈다. 원장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에게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나는 그렇다고 믿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었을 때,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기에 야구에 빠졌다. 정말 야구를 하고 싶어 공을 던지고, 이론을 공부했다. 야구 교과서라는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울 정도였고, 1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 책의 내용 일부를 기억할 정도로 진심으로 야구선수가 되기를 꿈꿨다.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그때 좋아했던 윤석민, 박찬호, 류현진, 김광현 선수와 같은 투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수행평가로 시 한 편을 썼던 적이 있다. 모든 선생님은 나의 시를 읽고 처음 써본 것이 맞느냐고, 표현력이 참 좋다, 책을 많이 읽었냐며 칭찬해 주셨다. 글쓰기에 충분히 재능이 있다고, 너 같은 애들이 나중에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농담을 섞어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피아노는 흥미로 만들어진 오랜 노력과 재미였는지, 중학교에 들어가니 공부를 핑계로 나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빴고, 자연스럽게 피아노에 손을 올리지 않게 되었다. 야구는 찰나였다. 잠깐의 재미, 일탈. 키가 크지 않다는 핑계로 나는 할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글, 글은 지금도 쓴다. 6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럼에도 나는 이것에 재능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베토벤을, 최동원 선수와 선동열 선수를, 카뮈를 꿈꿨지만 결국 나는 그들이 아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나. 우상은 내가 아님을 인정하고, 나는 그들과 같은 재능이 없음을 인지해야 했다. 나를 나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아 인지와 자아 인정의 순간은 큰 고통을 유발한다. 내가 꿈꿨던 미래의 나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곤 하니. 결코 나는 그들이 될 수 없다. 이 사실은 큰 회의와 비참함을 불러일으킨다.
반대로 그들도 내가 될 수 없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그들은 가졌을 수도,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내가 가졌을 수도 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쉽게 인정하지 못하곤 한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나는 나의 우상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은데, 수많은 사람은 자신의 우상을 자신과 동일한 선에서 바라보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우러러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 이는 니체가 한 말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다. 신의 부재는 우상의 부재, 우리의 우상 위의 우상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결국 같은 사람, 같은 인간임이 분명하다. 결국 우리 전체는 하나. 그 안에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
내가 가진 재능은 어쩌면 피아노, 야구, 문학 따위가 아닌 진심을 담아 나의 전부를 줄 듯이 사랑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