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99, '익명 편지 모음집 : 1,800명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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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말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타인에게 진심을 보이는 행위 자체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타인에게 진심을 보인다는 것은 크게 두 개의 경우로 정의할 수 있다.
1. 타인에 대한 믿음과 존중의 표시.
2. 타인에 대한 믿음과 존중의 붕괴.
결과적으로 진심을 보인다는 것은 모두 타인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진심을 표출하는 것에 어려움을,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가? 나는 여전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믿음에서 비롯되어 형성되며, 이러한 믿음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믿는다. 관계를 형성하는 속성의 가치와 무게는 변화하지 않았다.
진심을 보인다는 것은 한 개인의 내면을 전부 보여주는 것,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는 전장에서 갑옷을 벗고, 방패와 창을 내려둔 채 크세르크세스를 마주하러 가는 레오니다스의 모습과 같다. 이는 곧 현실적으로,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위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우리는 어째서 이러한 터무니없거니와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가? 믿음, 내가 헐벗은 몸으로 다가가도 나의 손을 잡아주리라는 믿음 때문에.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람을 사람을 존중하며 믿는다.
믿음을 기반으로 진심을 말하는 것은 타인 또한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을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진심을 말한다고 타인은 무조건적으로 진심을 표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진심을 표출한 쪽은 타인에게 나의 약점, 나의 결점을 표출하는 것과 같다. 이는 상대에게 테이블을 엎을 수도 없어 언제나 레이즈를 해야 하는 게임에서 나의 패를 전부 보여주고 진행하는 포커와 같다. 모든 결정권은 타인이 가지게 되고,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두려움, 우리는 진심을 표출한 후 언제나 무의식적인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참을 수 없는 내면에 존재하는 무언가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한 행위는 곧 또 다른 두려움이 되어 무게를 가중시킨다. 이를 의식하게 되었을 때, 우리의 계절은 겨울이 된다, 추위를 담아두던 극지방이 사라져, 손끝이 잘려나가는 듯한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이. 우리는 더욱 두꺼운 옷을 찾게 되고, 나의 그 어떠한 모습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관계의 발전은 멈춘다. 지속되는 가식적인 관계, 필요에 의한 비즈니스적 관계, 한기를 머금은 그러한 것들만이 우리 곁을 맴돈다.
나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진심을 말하고 싶어 한다, 타인의 진심을 알고 싶어 한다. 여전히 사람을 믿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니 더 알고 싶기 때문에.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헐벗은 몸으로 겨울을 맞이할 수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한다. 우리는 다시 진심을 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방주 아래로 쫓겨난 아담과 이브, 그 둘은 서로의 전부를 보았고, 함께 인간을 창조했다. 우리는 서로를 진실된 모습으로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쉽지 않다, 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겨울을 맞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우리 함께 편지를 쓰자.
발신인이 없는 편지, 오직 수취인만 존재하는 편지를.
발신인이 없는 편지, 수취인에게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편지를.
익명의 사서함, 불이 꺼지지 않는 익명의 편지 수신함.
나의, 당신의, 우리의 진심을 적어 보내자,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의 믿음을 가진 그 누군가에게.
우리, 함께 편지를 써서 보내자, 언젠가 그들에게 닿을 수 있게.
나는 당신의 오랜 친구, 지나치던 인연, 혹은 사랑, 어쩌면 지나갔을 수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