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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내일 Jun 03. 2023

나의 일 재정의하기

쓸모없는 일은 없다

직장에 친구 만나러 온 건 아닐 테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동료애, 인류애는 바라지 않겠다. 초단위로 업무의 진행상황을 살피면서 숨 가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일을 마쳤을 때 수고했다는 격려를 나누기에 이미 서로 너무 지친 상태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쳇바퀴 업무 속에서 보람, 성취감을 느낄 틈도 없을뿐더러 중간중간 상사의 독촉과 책임회피성 발언에 퇴사 욕구만 강해진다.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일이 나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는 걸까.

나의 에너지를 갈아 넣는 지금 이 시간이 괴롭기만 하다.


내가 하는 있는 직무가 전문적이지 않을뿐더러 데이터, 수치화해서 성과를 보여주기도 어려운 일이기에 업무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였다. 동료들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꾸준히 묵묵히 해온 것을 알고 있고 조직에 필요한 존재라고 독려해 주긴 했지만 나의 자존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자존감이 한 번 무너지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을 탓하게 되고 모든 상황이 괴롭고 불행하게만 느껴진다. 일은 점점 더 하기 싫어지고, 이직만이 답일까 목적 없이 취업 사이트만 뒤적인다.


하지만 곧 이런 시기도 결국엔 지나간다. 순간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퇴사를 외쳤던 경험은 2년 전 한 번이면 족하다. 마음은 너무 시끄럽고 생각은 정리가 안된 상태였지만 겉으로는 책임감 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럼에도 짜증 나는 날에는 속으로 혼자 거침없이 욕하며 풀어냈다. 나중에 돌이켜서 그 감정을 다시 돌아보면 너무 심하게 욕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하기 싫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못하는 업무 역량을 가진 사람과의 비교, 뭐든지 잘 해내야 한다는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었다. 그 외 동료, 상사와의 스트레스는 직장생활을 하는 누구나 겪는 상황이었을 뿐 본질적으로 나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잘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할 때 오는 자존감 하락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뛰어난 사람들은 주변에 너무 많고, 내가 보지 못한 영역을 발견하여 의견을 제시하며 성과를 내는 동료들을 보며 끊임없이 나를 비교했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을 부각해서 보다 보니 위축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첫 직장 인턴 시절, 매장에서 다른 업무는 배우지 못한 채 2~3개월 정도를 계산대에서 홀로 하루종일 계산만 했었다. 나보다 먼저 매장에 발령받았던 동기 언니는 매장 운영, 발주 등 여러 업무를 습득하고 배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조바심이 나고 언제쯤 저 업무를 배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어느 날 점장님이 나를 불러 카테고리별로 매장에서 잘 나가는 상품이 무엇인지, 이 상품의 기능과 사용 방법을 물어보셨다. 이게 맞나?라는 의문은 들었지만 여러 매출 관련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정확히 데이터, 매출 분석 자료를 본 건 아니지만 하루 10시간씩 계산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많이 찾는 제품, 구매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그때 깨달았다. 하루종일 계산만 하는 이 일이 쓸모없고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중요한 매출, 데이터를 몸으로 습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후로 후배들에게 가장 가치 없어 보이는 일이 기본이 되는 일임을 알려주며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조언해 줄 수 있었다.



쓸모없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깎아내리면서 자존감을 잃었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내가 하는 일은 쉬운 일이라서? 간단한 업무라서? 하지만 나에게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지 누군가에게는 이 일이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내가 쉽게 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나의 일을 다시 정의하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영향력을 넓은 시선에서 보고자 경력 기술서를 다시 정리해 보았다. 커리어의 핵심 키워드를 정의하고 이뤄냈던 성과, 나만의 역량을 써 내려가면서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살펴봤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 사이에 나는 조직에 필요한 다른 업무들을 수행했을 뿐이다.


분기별로 나의 커리어 방향성과 성과를 잊지 않고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이력서 정리는 필요하고, 방향을 잃고 일에 대한 지나친 회의감을 가졌을 때도 경력 기술서 정리는 중요하다. 열심히 살아온 나를 격려하고 다시금 일을 정의함으로써 스스로 보지 못했던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며 흔들리는 커리어는 단단해지고 한 단계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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