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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Dec 27. 2020

퇴사 후 현실은 어땠나

회사 안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

퇴사는 처음이라 서툰 게 많았다. 고민하고 마음먹는 것은 몇 년, 몇 개월이 걸려도 막상 입 밖으로 꺼내면 일주일도 안돼서  주변 모든 게 빠르게 정리되는 게 퇴사였다.


회사 대신해주던 것들

내가 퇴사한 시점은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 지원금 혜택도 많았지만 자발적 퇴사라는 이유로 백수가 되어 받을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은 딱히 없었다.


그동안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 것에 비해 사회적 지원과 보호가 없는 쌩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납부한 금액과 남은 기간을 알려주는 국민연금 고지서가 우편으로 도착했고 만 29세가 넘어서 건강보험 자격이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바뀌었다고 했다.


회사에서 나도 모르게 처리되던 서류들과 증빙내역은 이제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개인 내역이니 그것쯤이야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이런 자투리 서류가 진짜 퇴사했음을 실감 나게 했다.


회사의 울타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던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비록 이 울타리에 보호를 더 이상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아쉬웠지만 이 또한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였으니 이렇게라도 배운 것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제 내 소개가 될 수 없는 명함과 사원증

사원증은 반납했지만 지갑에 가지고 다니던 여분의 명함이 남았다. 이제 더 이상 내 소개가 될 수 없는 명함은 쓸모없는 종이에 불과했다.


글쓰기 수업을 갔을 때 낯선 사람들 속에서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이 없으니 백수라고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지만 퇴사했다는 얘기를 굳이 덧붙였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일을 했던 사람이고, 한때는 소속이 있었던 직장인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


한동안 나를 대표하는 회사, 소속이 없어진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온전히 나로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고 직장이 있었기에 존재했던 직급, 직책이 아쉬웠다. 한때 대리로 살던 나는 나로서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나를 보며 안심하는 동료들

오랜 직장생활이었기 때문에 많지는 않지만 내게 가족처럼 남은 사람들이 있다. 퇴사 후에도 줄곧 만났고 서로의 힘듦을 공유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회사가 아니더라도 이 사람들은 꼭 함께 갈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취준 생활을 보며 깊은 위로를 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지 말아야 했다.


방향을 잃고 지속적으로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방황했던 하소연을 하다 보면 ‘역시 나가면 고생이구나’라는 생각이 눈빛과 말투에서 새어 나오곤 했다. “차라리 공채로 제대로 취업준비하는 게 어떻겠어.” 혹은 “공무원 준비는 어때?” 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단순히 내가 점차 비어 가는 통장 잔고에 쪼들리는 안타까운 취준생이라고만 여겼던 것 같다. 그런 주변에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갈 수 있는 의연함이 필요하다.


이때 진짜 앞으로 쭉 갈 사람인지 아닌지 갈리는 경우도 있으니, 역시 사람은 다양한 환경에서 만나봐야 안다.


인간관계가 정리된다

재취업에 성공한 뒤 축하를 받기도 했지만 유난스럽게 잘난 척이 될까 봐 말을 아꼈다. 재취업 과정을 공유하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나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일부러 내가 사람들을 만나서 다시 취업했다는 것을 광고하며, 우월감을 뽐내는 것으로 오해했는지 사소한 행동들에 대해 주변 말이 건너 건너 들리기도 했다.


좋은 모습이든 안 좋은 모습이든 내 사례가 누군가에게 가십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씁쓸했다. 점점 더 나에게 남는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의 재취업 성공을 축하하며, 집을 초대받아 조촐한 자축 파티를 했다. 나의 일에 누군가 진심으로 응원해준다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잘되기를 응원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기를 기원했다.


나만 알고 있는 속도

퇴사가 아니더라도 다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백수는 유독 더 느리게 보이고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아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가 많다.


무엇이든 실수한 것도 없고 딱히 잘했다고 할 일도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타인과 힘들게 감정적으로 부딪힐 일도 없지만 내면의 고요함을 잘 견디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내가 만약 퇴사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떤 걸음,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작게는 나라는 사람이 나라 안에서 어떤 위치, 존재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서류상 어떻게 표현되는지 조차도 말이다.


나는 지난 8개월 동안 가족을 다시 볼 수 있었고, 내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며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할지 배웠다. 바쁘다고 외면했던 내 사람들을 다시 살펴보고 내 걸음 속도를 맞췄고 살아가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얻었다.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역시 가혹했다. 딱히 하고 싶은 일, 직장도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겹다고만 생각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닫는다.


불안함은 전과는 다른 나의 길을 다시 가보겠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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