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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이 Mar 01. 2020

비일상 속에서 일상을 찾는 법

코로나 19, 그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코로나 19로 최근 몇 주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불필요한 외출은 가급적 삼가라는 권고가 있었기에 평소의 루틴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렇게 며칠째 이어진 이 비일상 속에서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외출을 못하게 되니 갑갑한 건 둘째 치고, 왠지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비슷한 것이 생긴 듯하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온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되려 집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 것이다. 나중으로 미뤄두었던 큰 집안일들, 예컨대 이불 빨래나 겨울 옷 정리와 같은 일들을 하나 둘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청소를 혼자 자주 하는 편이긴 하지만, 때론 여러 명이 동원되어 해야 할 공동의 일도 있는 법이다. 동생은 현관 신발장 정리, 나는 거실 책장 정리를, 엄마는 흰 옷 손세탁을 담당하는 등. 어제는 동생 방 가구를 옮기고 청소를 같이 했다.


대학 졸업을 기점으로 드디어 내 방이 생겼다.


오늘은 엄마와 옷 수선 집을 찾았다. 허리나 길이 조절이 필요한 옷을 8벌이나 한 번에 맡겼다. 모두 차일피일 수선을 미루던 옷들이다. 엄마 말로는 이 집이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하는 가게라는데, 이번에 나도 눈도장을 찍고 다음에  또 혼자 가보아야겠다 싶었다. 내일은 겨울 패딩을 세탁하고, 수요일엔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러 가기로 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입을 블라우스, 원피스, 바지 등 총 8벌을 맡겼다.


생각해보면 집에만 있어도 시간은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른다. 나는 2월을 기점으로 졸업을 했고 동생까지 개강이 미뤄진 터라 온 가족이 삼시세끼 집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 끼 먹으면 바로 다음 끼니를 생각해야 하고, 장보기도 요리도 설거지도 돌아가면서 해야 한다. 가족들과 대면하는 시간도 부쩍 늘게 되었다. 가장 단순하지만 복잡한 일, 즉 공존의 일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고양이들 목욕도 시켜야 한다.


코로나 19가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비일상인 한편, 개인적 차원에서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적어도 내게는 일상으로의 회귀와 집중이 그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타지에서 오랜 대학 생활을 하고 돌아온 집이라 기존 가족 구성원들의 공간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내 생활 반경을 마련해야 했고, 기본적인 원칙을 다시 세우는 대화와 존중의 시간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또한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나를 깨끗하게 하고 주변을 한번 더 청소하는 등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게 되었으며, 평소 외출에 들였던 시간을 집과 가족에 투자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꽤 보람이 있다. 하루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고 모두의 건강이 회복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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