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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Dec 29. 2023

풍요롭지 않은 풍요로움

친구가 준 tea

혼자 먹는 아침상은 투명하다.

간단하게 단순한 재료로 오늘도 차렸다.

커피 대신 차와 함께.

오설록에서 나온 스윗부케향 티다

봉지를 열자 오래전 캔에 가득 들었던 오색 사탕향이 물씬 풍겨온다.

풍요롭게 달큰한 향이다.


차가 말을 건다.

친구가 안 먹는다고 가방에서 한줌 꺼내주고 간 차.

나에겐 향기로워 마지막 티백이다.

그 친구는 야탑이라는 곳에 산다.

야탑은 재밌게도

하탑, 중탑, 상탑으로 나누어진다는데,

친구는 상탑에 살아 숲이 가깝다.

가끔 배낭을 메고 우리 집에 오는 친구.

지난가을 배낭에는 찹쌀, 토란대 말린 것이 들어있었다.

강진의 시어머니 손길이 닿은 귀한 것들.

그리고 떨이처럼 꺼내놓은 차 봉지들.

배추 한 통을 매고 다시 야탑으로 돌아갔다.

쿨하게 다정한 죽마고마운 친구,

그렇게 많은 향을 던져놓고 간 건 몰랐겠지.


요즘은 차도 참 다양하게 나오더라.

마니아가 아니라서 녹차, 보이차 정도였다면, 이젠 향수처럼 취향으로 골라 마시는 분위기다.

어제 잠깐 화려한 차의 세계에 빠질 뻔했다.

가끔 구매하는 00메이커스에서 온 소식..

고급 지고 화려한 블렌딩 차가 떴다.

사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지만.. 생각한다.

예전과 다르게 향들에 끌리는 이유가 뭘까.


핸드로션, 차, 커피, 미스트, 팥주머니까지,

향으로 나를 유혹하는 생활 속 아로마 제품들이다.

아로마요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별한 향은 심신을 안정시킨다.

향,  소리, 이미지가 신경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최근에야 체험하고 있다.

지금 난 신경이 질풍노도이고 시간이 많다.

별것 아닌 일에 예민해지기도, 별것 아닌 것에 안정이 되기도 하는.

상태에 알맞은 음악은 생활의 밀도를 높이고, 불쑥 들어오는 특유의 냄새가 아닌 향기는 순간 기분을 달뜨게 한다.


그렇다고 일상을 오감으로만 채울 수 없다.

그것은 마약처럼 취하는 것이다.

조금 더 조금......  더.

*안갯속에 갇힌 가을 숲에서 요물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지하 세계로 끌려가지 않도록.

어딘가에서 내가 흐지부지된 날

몸에 과부하가 온날

쉬어야 할 때에 누리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계속 들으면 소음으로 변하는 것처럼,

과하면 마법을 잃는다.


풍요롭지 않기!

나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정신 줄 단단히 잡지 않으면 무엇이든 넘치는 세상에서는

풍요를 거부해야만 진짜로 원하는 걸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순수한 아로마요법으로 이런건 어떨지.

몸 어느 부분이 싸늘해져 오면

데워 갖다 대는 팥주머니.

구수하고 은은한 팥 향기가 온기와 함께 평화를 가져다준다.

온기는 몸을 가볍게 만든다.

국산도 중국산도 아닌 페루산이 제일 향기롭다는 건 안비밀.

페루의 자연이 코앞에 있는 듯해 잠시 그곳을 그려본다.


스윗한 차 한 잔이 페루까지 가버렸다.

끝.







*동화 <산적의 딸 로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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