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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un 14. 2024

미각 여행

어느 이탈리아풍 음식들

새로운 맛을 경험한다는 건 낯선 곳을 다녀오는 것과 비슷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음식이 소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음식은 배고픔을 면하는 수단이지 어떤 생각을 일으키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들 따라 하는 것처럼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니, 텃밭을 시작하고부터, 다른 말로 식재료의 일생을 지켜보면서부터... 한 끼, 또 다른 말로 반찬 한 가지가 예사로 보이지 않아 지더니 이렇게 대놓고 나온다. 그러고 보면 지금 지나가고 있는 갱년기랑 텃밭 가꾸기는 묘하게 닮은 데가 있다. 숨죽이고 있던 감각들이 깨어나는 예민한 시간이라고 할까. 음식 맛은 공감각이라 시각, 후각이 선동하면 미각이 자기의 영역인양 결정을 내린다. 거기다 기억까지 합세하면 이건 뭐 한 편의 문학이다.


셰프가 유명한 이탈리아요리 선생님이다, 직접 식재료를 키운다, 향교가 있는 마을에 있다 등 2년 동안 수집된 이 음식점 정보가 있으니 어느 날 그곳으로 가는 일이 생겼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말다 한 토요일 저녁 무렵은 습하고 밝았다. 와인 한 병을 들고 도착한, 이탈리아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레스토랑 마당에 들어서자 제철인 산딸기나무가 왈칵 들어왔지만 사진을 어디를 찍어야 될지 몰라 서성이다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간혹 대중음식점에서 집밥의 지루함을 달래는 우리에게 파인다이닝을 표방한 이곳은 낯설다. 예약한 손님이 우리들 뿐이라면 더 특별한 기분에 휩싸이기 쉽다.


앉은자리에서 바깥을 본 풍경

멀리 보이는 온실이 채소를 위한 장소인 것 같고, 인사처럼 눈에 들어왔던 산딸기나무가 창밖에 쪼르르 붙어있다. 이 산딸기가 요리에 요모조모 쓰이더라.

식전 샐러드와 후식인 이탈리안 우유 푸딩인 판나코타.

이 두 가지는 보통의 것처럼 상큼하고 달콤하여 식전과 식후를 열고 마무리하기에 무난했다.



메인 코스 요리는 다른 문화권에 다녀온 것처럼 색다른 맛이었는데, 그렇다고 이질적이지만 않은 우리 입맛에 정교하게 다가간 퓨전에 가까웠다고 할까. 이탈리아에 가보지 않은, 맛을 감각해 온 범위가 넓지 않은 사람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사람과 자연을 만나듯 생소하나 편안했던 요리들을 불러본다.


눈으로 먹는 4가지 환영음식

동구밖에 우르르 마중 나온 동네 꼬마들처럼 웰컴 음식이 4가지나 나왔다. 처음 만난 여러 명을 한꺼번에 보면 인지가 잘 안 되는 것처럼 서빙하는 분의 설명을 듣고 한 개씩 맛을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맛이 하나도 없다. 순식간에 쓱 지나가 버렸다. 다음 음식을 만나기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난하고 순한 맛이었다는 것 밖에는. 장식으로 나온 꽃을 물어봤더니 말로만 들은 '보라지유'에 그 보라지 꽃이었다.




근대와 저온 유정란

숲 같은 슾(soup)을 만났다. 찐한 초록빛이 놀라웠는데, 근대가 주인공이란다. 중간에 띄운 건 반숙을 조금 넘긴 상태의 계란. 감자가 들어가 걸쭉해진 근대의 부드러운 풋맛과의 조합은, 햇살이 듬성듬성 들어온 숲 속의 느낌이랄까. 맛있다고 표현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따뜻하게청량한 맛이라고 해본다. 거기다 바싹한 크루아상을 찍어 먹을 땐 고생하여 간 여행지에서 긴장감이 풀릴 때처럼 갑자기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라자네따

이제 찐 이탈리아에 온 듯하다. 나폴리스타일의 라자냐가 눈앞에 있으니. 라쟈냐는 넓고 얇게 뽑은 파스타 면을 층층이 쌓고 켜켜이 치즈와 고기, 토마토가 들어간 소스를 넣어 구운 것이라는데, 여기것은 특이하게 면을 눕혀 쌓았다. 미로같기도 파이처럼 담백해 보였으나 파스타라곤 스파게티밖에 안 먹어 본 사람은 진짜 이탈리아 맛이려니 여겨본다. 양이 적어서 다행이다. 여기쯤 배가 불러 조금 느끼해졌다.




해산물 까르토치오

음식 여행에 바다를 안 갈 수 없다. 이탈리아는 우리처럼 주변이 온통 바다이지 않나. 마침 느끼함을 잡아주는 짭짤한 해물맛은 식욕을 다시 부른다. 이탈리아식 오븐 해산물찜요리라는 까르토치오는 고향의 맛처럼 개운하고 푸근했다. 살펴볼 필요 없이 그냥 젓가락이 계속 가니 절제가 필요함. 아는 맛, 감칠맛, 맛있는 맛!




세계인의 음식이 된 스테이크로 주요리가 마무리된다. 바닥에 깔린 두 가지 색깔의 소스가 고기를 용서한다. 고기를 즐겨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거부감 없는 담백한 고기맛을 선사했으니, 이미 배는 충분히 불러 더 좋아하는 이에게 건넸다. 완벽하게 초식인 소가 환경오염의 주범인 육식의 대상이라니… 이건 소의 잘못이 아니다.



식도락가는 아니지만 음식이 주는 위로를 알고 맛을 음미하게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식욕을 터부시 하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공을 들여 상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밥을 먹는 집의 새 식구가 되어 문화적 충격을 받은 이후부터다. 사랑을 무게로만 가늠하지 정서로는 도무지 서로 느끼지 못하는, 언제나 불화를 안고사는 가족이 무슨 일인지 밥상에만 앉으면 이야기가 되고 모두 평등해졌다. 남녀노소 반주가 오가고 온갖 식재료에 대한 품평회가 이루어질 때 며느리는 또 다른 이방인이었다. 저마다 풀어지는 시간이 있어 화목한 가정은 아닐지라도 평범한 가정은 유지되는 것인지.

 

그럼 일상의 식욕마저 재단의 대상이 되면 어디에서 나를 돌볼 수 있을까. 어디에도 나를 풀어헤치지 못하는 생활은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은 줄어드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 그에 대한 보상은 가까운 이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안기고 되돌려 받기를 원한다. 사랑이든 물건이든 아무리 식구라도 원하는 만큼 되돌려 받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상대가 받았다는 것조차 모르거나 어디다 흘려버렸다면. 흔한 밥이라도 함께 먹으며 정을 나누어야 될 텐데.. 이미 그들의 밥상은 식었다.


수확이 얼마 남지 않은 하지감자가 겉으로 표시를 자꾸 내고 있다. 근처 땅이 쩍 벌어져 있기도, 풀 뽑는데 불쑥 하얀 얼굴을 내밀기도, 북치기에 서투른 밭주인의 결과물 초록이까지. 쬐금한 씨눈 하나가 뿌리를 야무지게 내려 얼마나 부지런히 덩이줄기를 만들어 내는지, 수확의 기쁨을 왕창 안겨주는 참 기특한 작물이다.

새로운 맛의 세계가 일상의 이벤트라면 늘 먹는 음식은 안전한 생활이다. 감자조림, 감자볶음, 감자전... 해 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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