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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Aug 19. 2024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아일랜드 노래들

나의 새로운 사랑은

아일랜드를 생각하네

산골짜기의 미풍이 불어

금빛 보리를 흔들 때

분노에 찬 말들로

우리를 묶은 인연을

끊기는 힘들었지

그러나 우리를 묶은

침략의 족쇄는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네

그래서 난 말했지

이른 새벽

내가 찾은 산골짜기

그곳으로 부드러운 미풍이 불어와

황금빛 보리를 흔들어 놓았네

1920년, 아일랜드 어느 시골마을.

소년의 주검을 둘러싸고 흐르던 구슬픈 노래의 가사를 옮겨 보았다. 조금 전까지 동네 형들과 들판에서 헐링경기를 했던 미하일, 17살 미하일은 영국군의 물음에 영어가 아닌 게일어로 대답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단박에 죽임을 당했다. 잇따른 청년들의 죽음으로 아일랜드 사람들의 영국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고, 저항의 중심에는 IRA(아일랜드 무장단체) 독립군이 있다.


마을에서 공부로 성공한 데미언은 의사가 되어 런던으로 떠날 참이었는데, 독립군 친구들은 남아 함께 투쟁하기를 바란다. 들어와 있는 영국군들도 미하일처럼 어린 소년들이다, 게일어로 말하다 개죽음 당한게 순교냐, 고 말하는 냉소적인 인물 데미언. 그러나 기차역에서 목격한 영국군의 무자비한 횡포는 그의 운명을 바꾸고 마는데.. 결국 발길을 돌려 형 테디가 이끄는 독립군에 가담하게 된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대의 아래 총격, 총살, 약탈, 고문, 배신 같은 비인륜적인 행위는 허락된 투쟁이 되어 난무하고, 급기야 배신한 동료(동네 동생뻘인) 크리스를 총살해야 하는 임무가 데미언에게 주어진다. 크리스 라일리는 어릴 적부터 알아 왔어.. 조국이란 게 정말 이렇게 할 가치가 있는 거겠죠. 낮은 바람소리만이 들리는 벌판에는 동료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데미언이 총을 내던지고 도망치듯 떠나는 뒷모습이 있다. 카메라는 마치 그 장소의 일인 것처럼 아무런 백그라운드 음악도 없이 잠시 따라가다 무심하게 장면을 바꾼다.


동료이자 애인인 시네드에게 크리스 일을 말하며 마지막 선을 넘었다고 괴로워하는 데미언, 되돌아갈 수 없어 투쟁에 몰입하지만 점점 독립군 내부의 분열은 형 테디와 데미언의 엇갈릴 운명에 다가간다. 테디에게는 군수자금을 대는 악덕 지주의 횡포가 눈감을 일이고, 눈앞에서 사랑하는 이가 영국군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어도 조직을 위해서라면 나서지 않을 일이다. 영국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라면 도덕이나 연민 같은 건 희생되어야 했다. 이런 차이는 조직 내부 분열의 시작이었고, 대립의 현장에 형제인 테디와 데미언은 다른 편에 서 있다.


그토록 원했고, 이루어진 영국과의 평화조약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이들의 다름은 더욱 드러난다. 조약은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그것도 반쪽만 자치령 자유국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테디는 어차피 안될 일 이 정도에서 타협하자는 입장이고, 데미언과 주변은 완전한 독립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기로 한다. 이젠 독립군에서 나온 자유군의 수장이 된 테디, 내전이다. 내전의 기막힌 한 장면으로 형 테디의 명령 소리에 맞춰 동생 데이먼이 총살을 당하는 것이다. 데미언의 유서 같은 편지를 시네드에게 전하는 테디, 그리고 테디를 때리며 울부짖는 시네드의 오열 장면을 보여주며 영화는 그냥 끝나버린다. 이토록 사실적인 영화라니.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게 막연하여 나라의 운명에 갇힌 형제의 비극으로 요약해 보았으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감정을 유도하는 배경음악이 절제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흐름이 지루한 면은 있으나, 쉽게 하게 되는 판단과 평가는 미루어진다.

아일랜드의 그 시기가 우리 근현대사를 매우 닮아있어 놀랍고도 익숙하여 비슷한 소재의 다른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기를 넘어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존재들인 인간에 대한 고찰로 다가와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매우 철학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철학은 멀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어 왜 가난한 일꾼은 동료들을 배신했는지, 어린아이에게 영양실조는 왜 왔는지, 거둬 먹인 동네 청년이 이웃 아주머니 얼굴에 총을 겨누는 상황은, 곱씹어졌다.

나아가 국가나 조직, 자유, 정치 같은 가상의 실재? 들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들인지, 개인의 가치는 얼마만큼인지, 언제나 진행 중인 전쟁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쩌면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하게 될 질문들이 떠오른다. 영국 감독이 아일랜드의 시련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도 실례가 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총살당하기 직전 데이먼이 쓰는 마지막 편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 무엇에 반대하는지 아는 건 쉽지만 뭘 원하는지 아는 건 어렵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원하는 걸 알지 못해 모든 갈등이, 사건이.. 피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게 아닌지.


보다가 접어두었던 영화를 다시 꺼내본 건, 아일랜드의 노래하는 아이 emma sophia를 발견하고 나서다. 코로나 기간 중 아는 사람들은 알았다는 노래로 위로를 전한 소피아. 아름다운 아일랜드 자연 속에서 포크송을 부르며 아이는 네 살에서 여덟 살이 되었다. 점점 국가나 나라의 개념이 무뎌져 가는 시대에 아일랜드 꼬마는 국가(歌)를 부르기도, 국기(技)인 헐링경기 결승전이 있는 날 노래로 동네 곳곳에 깃든 저항과 응원의 분위기를 전한다.

영상을 통해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조금 다가갔다가 영화를 보니 지루했던 이야기가 친절하게 다가왔다. 또 영화를 통해 노래와 일상에 서린 그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시련과 고난의 역사를 가진 아일랜드는 우리와 여러 가지 닮은 꼴이다. 팀 스포츠에 열광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민족, 노래로 시름을 잊고 달래고 힘을 내며 살았던 것이다.

위에 노래가사로 적은 것은 알고 보니 19세기 아일랜드의 로버트 드와이어 조이스라는 시인의 시라고 한다. 부활절 봉기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한 젊은이의 운명을 노래한 시라는데, 진짜 노래가 되어 고난의 민중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훗날 영화 제목에 영감을 주기까지.

소피아는 cork에 사는 아이고, 데미언 역을 한 '킬리언 머피'는 cork 출신 배우로 더블린에 산다. 아일랜드 남부 항구도시인 cork의 코브항은 타익타닉의 마지막 기항지로 유명하지 않은가. 슬픈 이민의 역사가 서린 곳, 이래저래 고난을 빼놓고는 아일랜드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일까.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들.. <원스> <싱 스트리트>는 그래서 더 애틋하고 신선하다.


가장 대중적인 아일랜드 포크송으로 알려진 <대니보이>를 소피아는 네 살 때 이렇게 불렀다.

https://youtu.be/-ndvSUA_kfk?si=dYNUgggLTzz4m4bj







*색이 다른 글은 영화 속 대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감독/ 2006, 영화사 진진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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