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위로> 중 8월
박물학자이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글쓴이 에마 미첼은, 25년간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스스로를 밀도있게 관찰하며 자연에서 치유의 길을 찾는 사람이다. 책 <야생의 위로>는 그런 과정의 열두달 기록이며 박물학자로서 그녀의 섬세한 자연관찰기 이기도 하다.
10월부터 시작되는 정해진 순서로 읽다가 문득 책장을 뒷쪽으로 빠르게 넘겼다. 기다리는 9월 편을 읽으려 한것이었으나 끝나가는 8월이 나도 봐달라는 듯 들어온다. 그래, 미우나 고우나 8월, 잘 들어간 것 같다.
미첼을 따라 이국의 바닷가를 산책하고 온 기분이랄까. 그곳 눈앞의 바다 생명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은 산책, 더위에 지쳐 잊은.. 사실은 귀찮아져가는 여름의 일을 여름의 맛을 여름이 끝나갈 즈음에 조금 일으켰다.
장소는 영국 웨일스 서부, 펨브로크셔 해안이다. 이곳은 미첼의 어린시절 가족 휴가지였고 학생 시절엔 현장 탐사지로 추억이 있는 곳이다. 8월, 무기력한 우울의 일상에 문득 이곳을 떠올린 건 지난날 그곳에서 경험한 자유로움에서 온 만족감과 강렬한 자연의 경이였다. <라이프 온 어스>라는 자연 다큐를 즐겨보는 아이, 어린 미첼은 바닷가 바위 웅덩이에서 잡은 작은 생명들을 양동이에 모은다. 좁디좁은 그 세계에서 발견한 것은 다큐에 나오는 어마어마한 해양생물만큼이나 매혹적이다.
1979년인가 1980년의 어느 여름에 나는 신기한 무늬가 있는 조약돌을 주웠다. 조약돌에는 작고 뾰족한 화산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었는데 주변의 바위에 있는 것과도 비슷했다. 조약돌이 마음에 든 나는 그것도 양동이에 집어 넣었다. 내가 만든 작은 웅덩이에 갇힌 새우와 게들이 꿈틀대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 무언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고 조약돌이 살짝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조금 전에 본 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물결 때문에 일어난 착각인지 궁금해하며 좀 더 다가가서 양동이를 들여다보았다. 그때 작은 화산의 꼭대기가 뚜껑 문처럼 활짝 열리더니 가느다란 분홍빛 술 모양 촉수들이 손아귀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촉수들은 위쪽의 물을 훑다가 일제히 뚜껑 문 속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뒤에 따개비 종류라는 걸 알게 된다.
다시 찾은 그곳의 바위 웅덩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흥미로운 곳이다.
해초가 안감처럼 들러붙어 있는 웅덩이 안을 들여다보자마자 진홍색 빨강해변말미잘이 눈에 띈다. 살짝 경사진 바위벽에 매달려 촉수를 뻗고 느긋하게 플랑크톤이 스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수면이 낮아져 물 위로 올라오게 되면 말미잘은 얼른 촉수를 움츠리는데, 마치 바닷물에 설탕 옷이 녹은 거대한 과일 젤리처럼 보인다.
양동이도 그물도 없는 지금, 그저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웅덩이를 들여다볼 뿐이다.
새우 여러 마리가 서로를 쫓아다니고 있다. 모래와 똑같은 색에 희미하게 점박이 무늬가 있어서 가만히 있을때면 거의 알아볼 수가 없다. 나는 완벽한 보호색의 진화에 감탄한다. 웅덩이 바닥에 놓인 거대한 돌멩이를 들어 올려본다. 기쁘게도 돌멩이 아래에서 게 세 마리가 허둥지둥 튀어나오고, 깜짝 놀란 새우들이 후다닥 해초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가장 작은 게는 땅콩만 하고 껍질은 화려한 흑백 무늬로 뒤덮여 있다.
딱지조개의 가장 오래된 화석은 40억년 전이라니 이 고대 생물의 후손이 두 바위 틈 사이에 있었다!
여덟 조각의 외골격 판이 겹쳐진 소형 연체동물로, 마치 다리가 없는 바닷가의 쥐며느리나 작은 악어가죽 조각처럼 보인다.
죽은 걸로 보이는 분홍빛 따개비 무더기에서 35년전 양동이에서 만난 경이가 되살아난다.
손상되지 않은 뚜껑 문 하나가 시커메지는 것 같더니 살짝 벌어지고, 곧 촉수가 빠져나와서 먹이를 찾는다.
대학 현장 탐사에서 만났던 베도라치(바다개구리)는 물에서 나와도 오랫동안 살아있는 특이한 생태의 해양생물이다. 여전히 그곳에 사는지 궁금하여 찾기를 시도하다가 포기에 이를 쯤, 선물처럼 나타난다.
협곡을 들여다보자 개구리를 닮은 작고 까만 얼굴이 음침하게 이쪽을 마주 본다. 배도라치다.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 해초 조각을 집어서 물고기 쪽으로 살짝 내밀어본다. 놀랍게도 베도라치가 요란한 덥석 소리를 내며 사납게 해초 끄트머리를 물어뜯는다. 나는 이 작은 생명체의 대담함에 놀라 움찔한다.
미첼은 과거를 품고있는 펨브로크셔 해안을 발길따라 걷고 바위 사이를 건너며 물웅덩이와 작은 협곡을 들여다 본다. 계절도 시절도 철 지난 바닷가이나 고독에 가깝지 외로움은 아니다. 그곳에는 어린 미첼이 있었다. 어른 미첼은 그 곁으로 다가가 어린 미첼과 살며시 포개었다. 조약돌을 주울때 등에 내리쬐던 햇살만큼 따듯했을까. 웨일스 서부 해안으로의 여행은 마음에 치유력을 발휘하고, 지난가을 이후 처음으로 나는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
불행했던 행복했던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을 위로하기도, 그 시절에게서 위로받기도 한다. 그렇게 하기위해 어린 나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울고 있고 웃기도 하는 어린 나를 . 어쩌면 지금의 내면은 용기낸 만큼이 아닌지. 미첼은 그래서 8월에 바다를 찾았다.
*색깔있는 글은 책 그대로 인용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 쓰고, 신소희 옮김/ 심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