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단편 읽기 2
계층 간의 갈등과 소통의 부재를 단 몇 시간의 일로 엮었다. 다소 조용한 모양새로 끝을 맺으나 사실은 비극으로 갈뻔 했던 웃픈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계층은 한 건물에 다른 층수로 존재했다. 펜트하우스, 중간층, 지하. 각자의 층에 머무를 때는 그 공간만큼 살아 별일 없다. 그들이 어쩌다 모였을 때 뜻밖의 희한한 사건은 준비된 일처럼 일어나고야 마는데. 모인 장소는 건물 꼭대기 부를 상징하는 펜트 하우스, 그날 주인부부는 그 시간에 없었으나 인테리어 잡지에 집이 실릴 사진촬영이 약속되어 있어 곧 돌아올 예정이었다. 한때 가난했던 그들에게 펜트하우스는 지난날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 멋진 인테리어는 자랑이자 명성이다. 그러면 주인 없는 집에 외부인들은 어떤 경로로 모여들었을까.
비안카 들어온 지 얼마안 된 펜트하우스의 외국인 노동자, 이탈리아인 가정부다. 나이는 어리지만 꼼꼼하게 일을 잘하여 주인에게 믿음을 줬지만 주인이 알지 못하는 세계는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순진한 이 아가씨가 말동무가 절실하다는 작으나 폭발적인 일 같은 것. 하필 집에 행사가 예정된 그날은 더 친구가 그리웠는지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도, 가게에서 처음 본 사람을 주인집에 들인다.
모건 씨 지하층에서 올라오는 술에 잘 취하는 관리인 겸 잡역부. 수도관에서 소리가 난다는 비안카의 거짓 전화로 펜트하우스에 들어온 사람이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일부 세입자들의 어리석음과 위선, 태도에 분노하고 그들을 경멸하며 특히 펜트하우스 부부를 우쭐대는 뜨내기라고 비아냥거리며 증오한다. 말로는 폭력성이 하늘을 찌를 듯 하지만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 그는 비굴하고 역시 위선적이다.
미스 윈턴 건물에서 15년 동안 살고 있는 가장 나이 많은 세입자. 독신이고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향이라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데, 안락한 생활에 필요한 돈이 충분히 있어 그렇다. 그날 식료품점에서 뒤에 들어온 비안카랑 말을 트게 된 건 반려견 때문이다. 규정상 아이는 허용되지 않는 펜트하우스 건물에 동물은 허락되어 이렇게 사람을 연결한다. 자기 개를 이쁘 해 주는 젊은 아가씨의 친절과 권유로 올드미스 언니는 주춤거리며 결국 펜트하우스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리고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며 중간(계) 층이 할 수 있는 열과 성의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녀의 세계일 뿐이었다. 사태의 처음과 근원을 얘기하려는 언어들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흩어져 버린다.
"우리 모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모건 씨 같은 남자나 댁들 같은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독신으로 사는 나이 많은 여자 가릴 것 없이요. 우리 모두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댁들과 나 그리고 모건 씨, 우리는 다른 세상에 속합니다."
"모건 씨는 댁들의 펜트하우스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답니다."
"나는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개하고 앉아 있거나 가게에 가죠.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요. 나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무언가를 해보려는 거예요. 이해를 도우려고 노력 중이죠."
중산층의 사회적 역할을 AI에게 물어보면 여러 역할 중 사회 통합에 대한 부분이 있다. 중산층은 다양한 계층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윈턴은 마치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처럼 펜트하우스 주인에게 지하에 사는 모건 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생각하여 준비한 말들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다른 세상에 속하기에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간절한 말들. 그러나 모건 씨는 사실 그녀를 경멸하며 펜트하우스 사람은 또 그녀를 이상한 여자로 볼뿐이다. 독신으로 사는 늙은 여자 윈턴은.. 중산층 이전에 존중받지 못하는 또 다른 소외 계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