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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Jun 19. 2022

상식이라는 덫

새내기 수사 경찰-1화

상식이란 18세까지 습득한 편견의 집합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2000년대 초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신체구조에 장애가 있다면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할머니의 오빠 되시는 분도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했는데 할머니는 늘 장애인 오빠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예전부터 장애인은 그저 수식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란 단어는 그냥 장애인이지 따로 분류하거나 우대해야 할 단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2000년 중반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는 여태 써오던 장애인은 틀린 단어라며 장애우라 불려야 한다는 캠페인이 열렸다. 학교에서는 장애우란 단어의 중요함을 수업시간마다 교육하고, 교육청에서는 관련 글짓기 대회를 해마다 여는 등 사회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적이 있다.



당시 어린 마음에 나 역시 필기까지 하며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장애우란 단어가 모든 장애인들과 친구•연대의식을 가져야 하며 장애우 건 비장애우 건 구분 없이 하나가 되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지식인가?


습자지 같은 초등학생은 그 길로 할머니에게 달려가 더 이상 할머니의 오빠에게 장애인이라고 말하면 절대 안 된다며 열변을 토하였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손주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시곤 “친구? 사람이면 사람이지 무슨 사람에 구별을 둬 따로 지칭한다냐? 난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굉장히 중요한 상식을 전한다는 생각에 들떴던 초등학생은 그 모습에 내가 옳고 할머니는 틀리다며 울분을 토하였고, 할머니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진리라 생각해온 어린 나로서는 장애우란 표현을 쓰는 것이 상식이자 옳은 것이라 굳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할머니의 반응은 당시 굉장히 실망스러웠고, 할머니의 사고방식은 틀에 갇힌 옛날 사고라며 함부로 넘겨짚은 채로 10년을 지내왔다.



해당 상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성인이 된 뒤,  2013년 신문기사와 사설들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수많은 신문에서는 장애우란 단어가 비중립적인 동적적 표현이라며, 심지어 장애인들이 해당 단어 자체가 서로를 구별하는 차별적인 단어라고 느낀다며 성토하였다.


당시 그 문구를 보았을 때  나는 마치 지구는 돈다! 를 처음들은 중세시대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스스로 지극히 상식이라고 생각해온 단어가 오히려 비상식적 표현이라니! 배움이 짧다 생각한 할머니의 혜안이 훨씬 깊고 옳았던 것이다


수많은 기사와 사설을 정독한 뒤, 일주일이 지나서야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자, 당일 죄송스러운 마음에 할머니에게 괜스레 안부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후 한 번도 입 밖으로 장애우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당시의 충격으로 상식이라 알더라도 확실하지 않으면 판단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개인의 상식 안에 타인을 함부로 정의해서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나는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구는 돈다! 는 충격은 점차 옅어지고 웬만하면 판단을 조심히 해왔기에, 다시는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에 찬 채로 지내왔다.


그러나 경찰로서 수사 경찰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거짓말처럼 나는 지구는 돈다! 는 이야기를 또 한 번 듣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만 있어 푸근해지던 고향 지구대 실습 이후.

5개월이 지나자 교육원 측에서는 서울에서 여성청소년 수사과 실습을 시켜주었다. 부푼 기대감을 앉고 도착했지만 지구대와 달리 직접 수사과에서는 실습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당직 비번 휴무라는 3교대 근무형태를 띠기에 서에서 실습하는 날은 단 4일에 불과하였다. 매우 짧지만 수사부서에서 3년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기에 다른 부서를 직접 보고 듣는 것은 소중한 일이었다.

 

내가 실습을 간 지역은 서울에서도 여성 청소년 관련 범죄율이 낮은 곳이었고 4일 동안 들어온 신고 건수도 오보였거나 상호 합의하에 종료하는 경우였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아무 일 없이 끝났기에 경계는 하되 마음은 조금씩 안심이 되었다. 해당 사건들은 교육원에서 배운 틀을 벗어나지 않았고 강력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이 생기는 듯했다.

 

조금씩 긴장이 풀리며 형사소송법상 규정을 읽어 내려가고 있을 때 젊은 청년 한 명이 우리 과로 불쑥 찾아왔다. 경제팀이나 형사과와는 달리 여성청소년과는 대부분 4층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기에 미리 약속을 잡아 놓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일 저녁에는 아무도 올 예정이 없었기에 고개를 들고는 연락 없이 온 청년을 빤히 쳐다보았다.


 

“데이트 폭력 사건 때문에 신고한 친구랑 같이 왔는데요”

그제야 아무 말 없던 김 경위님은 시계를 힐끗 보더니 낮에 오기로 해놓고 전화도 받지 않은 채 늦었다며 청년을 나무랐다.  청년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잠시  뒤 밖에서 누군가를 불러들였다.


쭈뼛거리던 또 다른 청년은 짜증이 가득 섞인 얼굴로 사무실을 들어왔다

 

“우린 연인 관계 아닌데 왜 자꾸 데이트 폭력이라며 출석하시라는 거예요?”


“연인.. 연인이요??”

나는 실습생 신분인 것도 망각한 채 그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곳에는 마치 나 혼자만 시간이 멈춘 듯 공기가 저릿거렸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수사직원분들과 청년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무슨 뜻인지 인지조차 되지 않는 듯했다.

 

“너네 애인 사이 아니야? 처음 신고할 때만 해도 남자 친구가 폭행한다며”


“그때는 술기운에 잘못 신고한 거라니까요. 그리고 우리 진작에 헤어져서 연인관계 아니에요 저번에도 말했는데”

 

 

데이트 폭력이란 대부분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범죄라 생각해왔기에 해당 광경은 굉장히 낯설었다. 마치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라는 벽이 또 한 번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일반 지식이나 용어가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난 또 다른 경우다.


당연할 것이라 생각했던 개념이 눈앞에서 붕괴하는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나는 그저 두꺼운 가이드북에 코를 처박고는 어떻게 대쳐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들에게 어떠한 말조심을 해야 할까? 아니면 특별히 안내해야 하는 게 있는가? 온갖 상식이 뒤엉킨 채 손은 빠르게 구글링 하며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웬걸. 그 사이 청년들은 다음 주에 다시 와서 정식으로 조사를 받기로 하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어떠한 특별한 조치나 대화도 없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여 수사관 분들의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얘기 들어보니 진짜 술 먹고 다툰 거 같은데 잘 못 신고 한 거 아니에요?”

“아니야 그래도 따로 있을 때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어. 수사관이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한 게 데이트 폭력이야. 신고한 친구한테 따로 문자 넣어서 일정 개인적으로 바꿔서 잡고 절대 같이 오라 하지 말고”

 

직원분들은 평소 수사하는 방식 그대로 방향성을 정하고 있었다. 남자와 남자 사이에 연인관계로 데이트 폭력이 접수되었다는 점은 아랑곳 않고, 신고자를 보호할 생각 외에 어떠한 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그 환경을 낯설어하고 무언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얼굴과 손바닥이 새 빨게 질 정도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구보다 상황을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봐야 하는 경찰이 스스로 상식의 선을 멋대로 긋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게 화가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동성애라 하여 호들갑을 떨며 무언가 다르게 대하고 더 조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오히려 사건을 사건만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가림막에 불과했다.


연인이라는 단어에 여자와 남자 사이만 있지 않고, 동성애란 단어에 시민을 특별히 다르게 볼 이유도 없다. 수사에 개인 사고가 들어서는 순간, 나와 같이 피해자를 분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는 판단하지 않은 채 동성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만 몰입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괸다.


단순히 나의 편협한 상식으로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지구는 돈다!’를 들은 것처럼 무언가가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수많은 사건과 사람을 접하며 이처럼 평소에 상식이라고 생각해오던 개념이 오히려 편협한 흉기라는  경험을 언제 또 할지 모르겠다.


이번처럼 10년 뒤일지, 아니면 곧바로 수사 경찰로써 첫 사건을 받았을 때일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개인의 상식이란 고정된 틀에서 사건을 보지 않고 항상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수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상식이라는 덫이다.

 

그리하여 수사를 하며 또다시 지구는 돈다!라는 충격을 받는 상황이 올지라도, 머리가 새하얘진 채 우두커니 서 있지 않고 최대한 대처하는 준비된 수사 경찰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그때 그 할머니를 가르치려 한 초등학생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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