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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Jul 30. 2022

억울함에도 무게가 있다면

새내기 수사경찰 - 4화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2주에 한 번씩 집에 내려간다.

처음에는 매주 갔었는데 쉼 없이 가게 되면 받았던 스트레스를 모두 가족들에게 던져주고 오는 경우가 많아 나를 내가 스스로 챙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가는 곳은 집이 아닌 고모할머니네다. 그곳에는 또 하나의 가족 복실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몸이 아프고 일이 아무리 많이 쌓여있어도 금요일에는 꼭 복실이를 산책시키기 위해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하여 도착한다.

2주에 한 번씩 봐도 복실이는 나를 보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내 주변을 10번 이상 돌고 그래도 반가움이 넘치면 심지어 소변까지 보고서야 나에게 콧등을 비빈다.



산책과 동시에 복실이가 아픈 곳은 없는지 상태는 괜찮은지 확인하고는 하는데 이때마다 나는 밥을 챙겨주시는 고모할머니와 아빠에게 탐정처럼 캐묻곤 한다.


“복실이가 배변 색깔이 조금 이상한데 설마 설탕 들어간 과자 또 주신 거 아니에요?”라던지, “사료를 안 먹는 거 보니 간이 들어간 국을 따로 또 말아주신 거 아니에요?”라던지 먹는 것 하나하나 질문해가며 상태를 살피곤 한다.


그때마다 고모할머니는 굉장히 억울해하시면서 그런 적 없다고 답해주시곤 한다. 그러나 예전 사료를 안 먹는다며 간이 잔뜩 들어간 김치 국물을 준 것을 본 이후로는 나는 두 번 세 번 물으며 대답을 듣곤 한다.


 아버지가 매일 가서 챙겨주긴 하지만 24시간 함께 있는 것은 고모할머니인데 너무 버릇없었나 생각이 들다가도, 때때로 설사를 하는 복실이의 모습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복실이는 나한테도 가족이야. 예전에 몰랐을 때 준거로 매번 이렇게 물으니 원 억울하다. 뭐 얘기하면 좀 들어봐.”


어느 날 참외를 복실이에게 던져주시는 것을 보고 씨를 빼지 않은 거냐며 직접 확인하려 하자 고모할머니는 서운하신 듯 한마디 하셨다.


어떠한 말을 들어도 별 동요하지 않던 나는 ’ 억울하다 ‘라는 단어에 순간 당황하였다. 물론 그저 평범한 대화 속에 나온 단어이지만 매번 조사실에서만 듣던 단어를 가까운 가족에 입에서 듣고 나니 뭔가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억울함을 들으려고도 안 한다니, 순간 내가 수사관이 맞는지 부끄러움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흔히 수사과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억울하다’이다.


100일이 넘은 시점 맡은 사건은 수십 건 동안 사건의 피해자건, 당사자인 피의자이건 경찰 서문만 열면 모두 억울하다는 표현을 한다.


억울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작게는 ‘그게 어떻게 죄가 되나요?’에 사부터 ‘고소한 사람을 무고죄로 역고소해버리겠다 “는 적극적 표현까지 다양하다.


 수사관은 본래 혐의 여부를 판단하여 검찰로 송치 불 송치만을 결정하기에 사람이 아닌 사건만을 보기에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려 하지 않는다.  5천만 명이 겪는 사건이 제각기 다양할 텐데 어떻게 우리가 진실 여부를 함부로 판단하겠는가.

그러하기에 수사관은 사건 정황과 증거만을 자세히 볼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객관적인 자료보다 사람의 말을 더 들어주어야 할 때도 있다.


 저번 주에 받았던 사건도 그러한 사건이었다.

 ”이주임 님. 사건 배당되었습니다. 청소년 술 판매 사건이네요 “

 얼굴을 찌푸린 채 받아 든 서류에 사건은 문신을 한 학생들이 어른들에 섞인 채 식당에 들어와 술을 시켜먹고다가 옆 테이블에 신고당한 건이었다. 당시 종업원이었던 분은 중국동포였고 학생들이 문신을 잔뜩 한 채 술을 시킬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여 그대로 술을 줬다고 적혀있었다.


 이러한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없고 위반사항은 CCTV에 너무 명확하게 증거가 남아있어, 청소년들이 신분증을 위조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곧바로 검찰로 송치되는 사건이다.

다만 정작 위반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아 심적으로 꺼려지는 사건이었는데 처음으로 배당받게 된 것이다.



 술을 판 종업원분은 중국에서 귀화한 지 얼마 안 된 분으로 굉장히 말이 서툴고 안절부절못하였다.

그분은 자신이 처벌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가게가 문을 닫을 것을 염려하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하며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최대한 그분을 달래며 부드럽게 조사를 하고자 노력하였고 조사는 빠르게 끝이 났다.


 문제는 술을 판 가게의 사장님이었다. 그분은 본인이 판 것도 아니고 주의를 주었음에도 아르바이트생이 술을 팔아 형사처벌, 나아가 영업정지라는 행정처분까지 받게 되었으니 굉장히 화가 난 모습으로 조사실을 방문하였다.


 ”그분이 얼마 전에 한국에 오신 분이라 확인을 안 한 것 같아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혹시 어떻게 안될까요 “

 ”평소에 미성년자 등에 술을 팔지 말라고 교육을 해왔다는 걸 증명하실 수 있으면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처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


사실 이러한 사건을 겪기 전에는 최대한 신분증을 매번 검사할 하는 것을 일일이 교육일지에 남기거나 카톡으로 교육하는 분들은 별로 없다. 그러하기에 나는 무미건조하게 교과서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관님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제가 처벌받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당 무리에게 동일하게 당한 가게들이 이 일대에 몇 군데 더 있어요. 정말 억울합니다 학생들은 처벌되긴 하나요 “


 ”학생들은 참고인 신분이라 소속 학교와 부모님께 통지는 하여 놨습니다 “

차마 나는 막상 술을 사간 학생들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신분증을 위조했다면 업주는 영업정지등의 행정처분은 면할 수 있지만, 이번 건은 단순히 어른들 틈에 섞인 채 그것도 문신이 가득한 청년이 학생이라고 판단하지 못한 종업원의 실수 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수사관으로서 뭘 더 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아버지뻘인 50이 넘은 나이에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울분을 토하는 피의자의 모습에 마냥 형식적인 말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타이핑하던 손을 내려놓고 평소보다 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였다.


몇 번의 사업 실패와 코로나로 인한 운영의 어려움, 가족문제까지. 사장님은 다른 조사관들이 동일 사건에 할애하는 조사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리고 그제야 결국 돌고 돌아 사장님은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그런 일이 없도록 교육을 철저하게 하겠다는 말로 조사는 끝을 맺었다.


 “말하고 나니 후련합니다. 처벌은 당연히 받아야죠. 다만 이런 걸 가족들이나 주변에게 말해도 잘 모르고, 아는 분한테 말하니 조금이나마 채증이 싹 내려갑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조사실을 나왔을 때 그저 들었을 뿐인데 피의자인 사장님은 나에게 이야기를 들어주어 홀가분하다며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불 송치도 아니고 있는 사실 그대로 검찰로 송치되는 상황에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겸연쩍으면서도 사장님을 다시 자세히 보게 되었다.


 처음 울그락불그락 한 얼굴로 사무실을 뒤엎을 듯한 사장님은 어느새 그저 달관한 듯 편안한 뒷모습으로 경찰서를 나갔다.

위법행위를 저지른 것도 맞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도 맞지만 어쩌면 그들에게는 처벌당한다는 스트레스보다 억울함을 어디에다 토로하고 공감받을 곳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흔히 억울함의 무게는 각기 다르다고 생각한다. 저지르지도 않은 범행으로 옥살이를 하는 경우부터, 업주이자 책임자로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술집 사장님까지 다양한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시각으로 억울함의 무게를 정하려고 한다.


들어 보면 정말 모두 억울하다. 나도 함께 분통이 터지는 일들도 많다. 법이라는 것이 억을 함의 무게를 들어보고 공정하게 가려 준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답답한데 수사관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각자 가장 힘든 군대 부대는 자신이 나온 부대이듯. 해당 사건에 있어 가장 억울하고 힘든 사람은 사건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함부로 억울하겠다 말다를 고려하기 전에 경찰서에서 그저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주는 모습이 시민들에겐 더 필요한 게 아닌가 느껴졌다.



다음 주 고모할머니네 집에 가면 복실이에게 어떤 음식을 주었냐고 간단히 묻고는 억울해하는 고모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한 주를 가져봐야겠다.


가족부터 시작해 나아가 다음에도 시민의 억울함의 무게추를 달려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는 한 주를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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