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은 우리 집 냉장고 문에 붙어있는 6살 적 사진이다. 그 사진 속에는 네 명의 인물이 있는데 할머니, 나, 엄마, 아빠다. 배경은 겨울 한라산 등산코스 중 하나인 윗세오름 입구. 나중에 이야기 듣기로는 나와 할머니 아빠는 내려가고 엄마는 다른 가족들과 윗세오름까지 가서 대피소에서 소원하셨던 그 맛있는 컵라면까지 드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다음, 내려오는 길에서 큰 눈보라를 만나 위험한 순간을 넘기며 얼음 알갱이를 직접 얼굴에 맞으셨다고 한다. 온 힘을 다하시며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길을 기어서 무사히 내려오셔서는 우리를 안고는 엉엉 울었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중학교 시절에는 우주소년단이라는 준거집단에 가입을 하여 여러 산을 즐겨 찾았던 덕분에 중2 여름방학에 백두산을 가게 되었다. 애국가에 자리 잡아있는 백두산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난 정말 가슴이 벅찼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록담이 안갯속에서 서서히 자취를 들어내고 애잔한 들꽃들이 모습을 나타내자 피곤함이 확 달아나면서 우리 민족의 정기란 이런 것이고 우리는 용맹한 고구려의 후예이구나! 어디선가 용감하게 말달리던 기마민족의 웅장함이 진짜 저 멀리 환영으로 보이는 듯하였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 땅을 밟아본 나는 산의 정기를 받아서 인지 매일 그것도 맨발로 서울의 생명산인 남산을 오른다. 내가 특별히 산을 좋아해서 매일 가는 것은 아니고 우리 과 100명이 매일 오후 6시가 되면 남산을 구보한다. 그것은 우리 학교와 남산이 가까이 있어 선배들이 우리의 체력단련을 위해 세운 우리 과 전통이다.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아침잠의 달콤함을 뿌리치고 내가 매일 남산을 오르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 했지만 3월부터 나는 모든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버리고 무엇을 향한 전진 인지도 모른 채 남산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돌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끝을 알 수 없는 길이 펼쳐져 있고 양 옆에 선배들이 우리를 지휘하며 뛰기 시작한다. 아직도 매서운 바람이 불고 사람조차 거의 없는, 등이 켜진 듯 만 듯 어두운 길인데도 언제 끝날 지를 모른 채 몇 바퀴를 왔다 갔다 하였다. 남산의 나무고 꽃이고 땀에 가려 보지 못하였고 연애와 자유로 가득 찰 것 같았던 나의 희망에 찬 대학 시간은 검은 운동복들의 구호에 파묻혔다. 어린 시절의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 있던 산에 대한 추억은 남산을 뛰면서 하나 둘 사라졌다.
지금은 기분 좋은 바람의 숨결이 닿는 9월.
오르기 싫어서 화를 내며 오르던 그 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던 그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오면서 정답기까지 하다. 하루에 있었던 가슴 답답하던 일들도 이 숲에만 들어오면 초록의 기운들이 나를 평화롭게 해 준다.
죽음을 무릅쓰고 험난한 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에게 왜? 산을 오르는지 물으면 산이 있어 오른다는 그 우문우답이 6개월이 지나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다. 3월에 하던 대화와 지금 9월에 하는 대화는 주제가 많이 달라져 있다. 물론 시간이 우리를 성숙하게 한 것도 있지만 발에 닳는 흙의 감촉은 내 온몸을 타고 올라와 말할 수 없는 평화를 안겨 준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발을 옭아매고 있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흙길을 걸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 느낌은 해본 자만이 알 수 있으리라. 내 발을 간질이는 그 흙의 느낌은 내가 남산의 한 그루의 나무로 만들어 버리는 이탈을 맛보게 한다. 그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도 오후 6시가 되면 하얀 운동복을 입은 청춘들이 남산을 오르지 않으면 남산 구보 길의 풍경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다. 어쩌면 우리가 남산 6시 풍경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 셈이다. 산에 대한 부정적 생각도 거의 사라져 그전에 그저 빨리 지나치고 싶은, 장소를 살짝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생각했던 나무와 꽃들도 어느덧 천천히 둘러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휴식공간이 되었다.
3월, 산은 평소에는 다시는 오르지 않을 것이란 다짐은 주말 아침마다 역겨운 매연에 휘감긴 도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들르는 고향집처럼 느껴지면서 다음 주 주말 아침이 기다려지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친구들과 늦은 모임에서 탁해져 오는 공기에 답답함을 느끼며 내 머릿속에는 숲의 정경이 떠오르며 아! 내일 아침에 산을 오르면 되지! 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불만으로 올랐던 산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산을 자주 뛰어다니지 않았다면 학교 뒷산처럼 느껴진 남산에 갈 일은 한 달에 한, 두 번을 갈까 말까 그것도 아니면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컴퓨터를 즐기는 나는 어쩜 눈뜨면 남산타워가 보이는 곳에 살면서도 한 번도 안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남산을 뛰지 않으면 언제나 창살에 갇힌 기분이 든다. 산의 맛을 몰랐다면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컴퓨터 게임이나 오락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이다. 나무를 보며 사색에 잠기는 맑은 자연 대신에 담배 냄새에 갇혀 비생산적인 일에 온갖 정신을 다 집중했을 내 모습에 지금도 그 당시 힘들었지만 의미 있던 남산 구보 길에 감사한다.
구보 후에 계단에 앉아 내 온몸으로 스며드는 피톤치드를 느끼며 맑음 속에 오늘 하루를 정리해본다. 그리고 또 내일을 꿈꾸며 20살의 청춘들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런 친구들을 돌아보며 생각해 본다.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 남산에 남긴 우리들의 발자국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 100명에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