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할 것 없는 베이킹
우리 집 아이들이 생애초기에 섭취한 식품 중 하나는 바게트다. 프랑스 출신인 남편 말론, 프랑스에서는 치발기 대신 바게트를 아기 손에 쥐어 준다고 하길래 한 번 줘봤던 것인데, 웬걸 아이가 냠냠 인내심 있게 잘 먹었다. 자기 침으로 촉촉해진 바게트를 물어뜯는 아이를 보면 어찌나 프렌치스럽던지?!
바게트는 프랑스의 상징이라 할 만큼 프랑스에서 전국민적으로 사랑받는 빵이다. 바게트를 손에 들고 걷는 사람들의 풍경. 내가 시댁을 떠올리면 함께 생각나는 장면 중 하나다. 바게트가 빠진 프랑스식 식사는 밥 빠진 한식차림이라고나 할까. 전식, 메인, 치즈타임까지 곁에 두고 조금씩 뜯어먹을 수 있는 기특한 빵. 이 빵은 식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금씩 없어지기도 십상이다. 식욕이 왕성한 청소년들은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바게트를 뜯어 입으로 가져가고, 나 같은 빵순이는 빵집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이미 조금씩 뜯어먹기 시작한다. 갓 구운 바게트의 향과 맛은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는 감자칩보다 더 중독적이다.
큰 오븐이 생긴 이후로 집에서 바게트를 굽기 시작했다.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보고 구워봤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꾸준히 굽는다. 우리 집 세 사람은 내가 구운 바게트가 제일 맛있다고 엄지 척 칭찬일색이다. 사실은 갓 구운 빵이라 맛있는 것뿐인데. 후후.
아이들이 일찍 돌아오는 매주 금요일 점심메뉴는 바게트 샌드위치다. 심플하게 햄과 치즈만 넣은 것으로. 취향에 따라 햄과 버터만 넣어 먹기도 하고(그 유명한 잠봉뵈르), 기분에 따라 양상추, 토마토 등 채소를 추가해도 되는, 정해진 답 없는 샌드위치.
어느 날인가에는 바게트 반죽을 만들어 휴지 시키면서, 오븐 켠 김에 뭐 하나라도 더 굽자고 생각했다. 일종의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곧이어 버터 잔뜩 넣은 마들렌 반죽을 만들었다. 오븐에서 갓 나온 바게트를 식힘망 위에 올리고, 곧이어 완성된 마들렌을 하나하나 틀에서 빼냈다. 보통 이럴 때 다른 사람들은 뭘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기다란 나무젓가락의 도움을 받는다. 요리할 때뿐 아니라 베이킹에도 젓가락을 사용하는 걸 보면 난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어로 젓가락도 ‘바게트’라고 부른다. 바게트가 막대기라는 뜻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체형은 좀 다르지만 둘 다 기다란 막대기처럼 생겼으니까.
간식용 달달한 케이크류를 굽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퍼프 페이스트리를 이용해 사과 타르트를 굽거나 당근케이크, 컵케이크, 브라우니, 파운드케이크 따위를 구운 날이면 집안에 달콤한 냄새가 가득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냄새에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 엄마 노릇하는 맛이 이런 거 아닌가, 싶다. 이렇게 베이킹에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코로나 시절에 프리 믹스로 시작한 베이킹이 점점 그 종류를 늘려간다. 베이킹이라는 것을 해보니 들이는 수고에 비해 아웃풋이 좋다. 섬세함이 부족한 나는 비주얼을 포기하고 투박하게 반죽을 성형하는데, 아직까지 입에 대기 싫을 만큼 못생긴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예쁜 케이크가 필요할 때는 전문가를 찾으면 될 일. 너무나 자연스럽고 기쁘게 내 삶의 일부가 된 베이킹을 언제까지고 계속하고 싶다.